한 줄 오두막 편지

여전히 눈이 내리고

더불어 숲 2025. 2. 12. 22:59

 

 

2025년 정월 보름날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밤새 눈이 내리더니 그치지 않고 하루 종일 이어 내립니다.

기대했던 보름달 선물은 흰 눈으로 대신하는가 봅니다.

20개월 외손녀를 춥다는 이유와 눈 내린다는 핑계로 할아버지 품에 꼭 안아서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내리는 눈이 아까워서, 거리 풍경이 잘 보이는 카페에 들렀습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서 손님이라곤 겨우 한두 명 한가한 카페, 창밖 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았습니다.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아침 겸 점심 식사를 대신할 빵 두 개, 눈 내리는 풍경은 덤.

아내와 나란히 앉아 별 말없이, 그래도 충분히 전해오는 따듯한 마음, 무심히 창밖을 바라봅니다.

창밖에는 횡단보도 신호등 아래 빨강 우체통 하나 덩그러니 눈 맞으며 서있고, 요즘도 누가 저런 우체통을 이용해 편지를 보낼까? 그리고 저 우체통에서 과연 우편물을 수거해서 가져가기는 하는 걸까? 그런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저 하나의 풍경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심을 거두란 듯 누군가 눈을 맞으며 편지인 듯, 엽서인 듯 우편물을 우체통에 넣고 길 건너 정자 아래에서 길게 담배를 피웁니다.

무슨 사연일까?

여긴 눈이 내립니다로 시작하는 글로, 외로움을 꾹꾹 눌러 담아서 쓴 편지일까? 아니면 보고 싶다는 사연을 담은 그리움을 가득 담아서 보낸 엽서일까?

우리 부부가 오기 전부터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는 미처 마시지 않고 있는 커피가 식어가고 있고, 그치지 않은 눈처럼 통화를 길게 길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들 하루 종일 눈이 내려서, 눈이 쌓인 만큼 외로움이 쌓이고 누군가 그립고 보고 싶어서 그런가?

카페에 앉아 있는 시간이 꽤 된 듯 우리 옆 테이블에는 여러 사람이 앉았다가 떠나고 창가의 아주머니는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전화가 이어지고....

나의 의심을 거두라는 듯이 우체국 집배원이 오더니 눈 쌓인 우체통을 열쇠로 열어 우편물을 수거해서 살펴보더군요.

그때까지 건너편에 정자 아래에서 길게 이어서 담배를 피우던 중년의 남성은 이제 안심했다는 듯 눈길을 헤치고 떠납니다.

마치 꾹꾹 눌러쓴 나의 애틋한 손 편지가 제대로 주인을 찾아갈 수 있어 안심된다는 듯이, 나의 일처럼 마음속으로 다행이다 다행이다했습니다.

건너는 사람도 없는 횡단보도 신호등은 파란불 다음 빨강불이 여전히 깜박이고, 여전히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옆 자리 손님이 오고 떠나길 반복하고  우리는 오래도록 창밖을 무심하게 바라봤습니다.

하루종일 여전히 눈이 내리고.

 

2025년 2월 12일(정월 보름날). 박영오 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