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전시장에서 치료약을 찾습니다.
어라, 그림이 왜 이렇게 안되지, 붓이 마음먹은 대로 가지를 않네.
작품을 마무리해놓고서 마음에 들지 않아 한참을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저만큼 앞장서서 가고 있는데 손은 더디게 헤매고 있습니다.
슬럼프에 빠진 걸까?
한동안 제법 붓질이 되네하며 거들먹거렸더니 얄팍한 허세에 따라가 주질 못하는 붓질이 거부하네요.
그런 시기가 있더군요.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마음먹은 대로 붓은 가지 않고......
알고 있습니다. 이럴 땐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쉬며 다른 화가들 전시회 많이 둘러보고, 그림 관련 책 읽고 그냥 낙서처럼 붓 들고 놀고 그러다 보면, 턱 높은 다음 계단 슬며시 올라서곤 하던데,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군요.
이게 나의 한계사항인가 싶어 불안하고 그냥 여기서 그치는 걸까 의심이 들기도 하고........
나의 경험상 최고의 치료약은 역시 전시회 많이 찾아다니며 다른 화가들 작품을 보거나 여행 중에 곳곳에 있는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앞선 선배 화가분들 작품 감상하며 영감을 받는 것이 효과적이더군요.
요즘은 애써 전시장이나 미술관을 찾아가지 않고서도 미술 서적이나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쉽게 원하는 작품을 볼 수 있지만, 전시장이나 미술관에서 실물 작품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보는 그 맛, 시간과 요일을 잘 맞춰 가면 적막감이 감도는 미술관에서 내 발자국 소리가 크게 들리는 고요함 속에서 방해받지 않고 천천히 그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각각의 미술관마다 담겨있는 그 분위기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일회용기에 담겨 오는 배달 음식보다는 역시 전문 식당에 찾아가서 요리하는 과정을 얼핏 보며 잘 차려주는 밥상이 더 맛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전시장과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나도 그림 그리고 싶어서, 허기져서 마음과 손이 꿈틀거리고 절박하게 그림 그리고 싶어져, 밤새 붓 들고 씨름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 뭉쳐 버린 종이가 수북하게 쌓여갈 때,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슬며시 치유되더군요.
그런데 세세한 붓질과 표현 방법 기술적 방법은 한국화 선배님들 작품에서 영감을 얻거나 배우고 가는 길을 익히지만, 천둥이 치듯 번쩍 영감을 받거나 찌릿 감전된 듯, 다녀와서 밤새 못 잊어서 다시 전시장이나 미술관을 찾게 되는 것은, 나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화가분들 전시장에서, 다른 장르 미술관 작품에서, 또는 자연에서 얻을 때가 많더군요.
얼마 전에 국립중앙박물관 별관에서 있었던 ‘에곤 실레’ 작품과 ‘구스타프 클림트’ 초기 작품 등이 전시된 ‘비엔나 1900’ 전시장을 다녀왔습니다.
긴 대기줄과 기다림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10호 정도의 작은 크기의 ‘에곤 실레’ 자화상이 자꾸 눈에 밟히고, 수많은 금빛 은빛 잎사귀가 반짝이던 ‘구스타프 클림트’ 초기 작품인 ‘큰 포플러 나무Ⅱ’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구매해 온 화보집 인쇄물로는 절대 대신할 수 없지만, 다시 찾아가기에는 이미 전시회가 끝이나, 화보집을 다시 보고 또 보며 그날의 감동을 되새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 감동 또한 슬며시 잠들게 되고, 계절이 세월 따라 반복해 흘러가며 어제 핀 꽃이 지고 또 다른 꽃이 펴 감동을 주듯이, 그림의 영감과 또 다른 감동은 다른 길로 반복해 다시 오며 가고, 멈칫멈칫 이것도 그림인가 구시렁대며 따라가며 변하듯 반복하듯 그런 세월이 내 삶속에 내 나이 속에 축적되어 가고.......
2025년 3월 중순. 박영오 글 그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