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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갑니다 (영덕 옥계 '침수정' 화첩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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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불어 숲 2017. 11. 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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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옥계'침수정' 화첩기행 - 박영오 작 (2017년 10월 말)



옷깃 속으로 서늘함이 밀려오는 깊은 가을입니다.
서늘한 기온과 함께 심리적 시간이 빨라지는지, 지겹던 지난 여름이 언제 그랬던가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가을은 짧게 지나가고 이내 겨울이 다가오겠지요.
나이에 비례해서 세월의 빠름과 삶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가을이 되면 새삼스레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을은 외로워지는 계절인가 봅니다.
붉게 물든 단풍은 화려하지만 이내 지는 저녁놀처럼 그렇게 사라져가고, 스산한 바람소리, 옷깃을 파고드는 서늘함, 점점 어두워지는 시간이 빨리 오고, 미련 없이 뚝뚝 떨어지는 낙엽, 힘없이 나풀거리는 나비.......
그 외로움에 익숙해져갈 무렵이 되면 가을은 이미 끝나가겠지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詩) “가을날”이 생각납니다.

“가을날”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어,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극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고,
완성으로 이끄시어 무거운 포도 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넣어 주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혼자로 남아서
깨어나,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뭇잎 떨어져 뒹굴면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글 그림 박영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