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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화실 이야기 - 부채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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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불어 숲 2018. 6. 1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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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옥계 부채그림 - 박영오 작 (2018년 6월)












오늘도 산중 오두막 화실에는 이른 새벽부터 비가 내립니다.
내리는 비를 보려고 처마 밑에, 아예 의자를 가져다 놓고 멍하니 바라봅니다.
숲에 내리는 비도 좋고, 멀리 내려다보이는 호수에 비가 내리는 모습도 좋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도 좋고, 수련 잎에 빗방울 굴러가는 모습도 다 좋습니다.
욕심 부리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과의 화려한 삶을 비교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른 봄에 화분에 담긴 산머루 나무를 화원에서 구입했습니다.
오두막 화실에 야외화장실을 마련하면, 화장실 지붕 위로 넝쿨을 올릴까 싶어서 말입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산머루 나무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여 옮겨 심지 못했습니다.
작은 화분에서 꽃을 피우더니 제법 여러 송이 머루를 맺었습니다.
작은 화분에서 자라는 산머루 나무를 볼 때 마다 안쓰럽고 괜히 미안해지더군요.
제자리를 찾아 옮겨 심어야 하는데 이미 제법 커버린 산머루 열매가 혹시나 탈이 날까싶어 머루가 다 익은 다음 가을 즈음해서 평생 살아갈 자리를 찾아줄 요량으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넝쿨을 올려주지 않으면 머루도 나무도 상할 정도로 자라서, 오늘, 비 오는 날 처마 밑으로 화분을 옮겨와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고 거름도 넉넉하게 주었습니다.
‘잭과 콩나무’에서처럼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를 만들어 넝쿨을 올려주었습니다.
비 오는 날, 산 중 오두막 화실 처마 밑에서 숙제 하나 해결했습니다.
마음에 쌓인 숙제를 하고나서도 아침 8시 전이네요.
아직도 비가 내립니다.
야외 가스버너에 물을 끓여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으스스 춥던 몸이 따듯한 라면 국물 한 모금에 풀어집니다.
비 오는 날, 컵라면 이것 하나면 오전은 행복할 것 같습니다.
오전까지는 비가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가 내리는 숲과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어서요.


(글 그림 사진 박영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