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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마음의 갑옷도 필요합니다.

그림 일기

by 더불어 숲 2021. 4. 2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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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2021년 봄)

 

 

 

얼마 전에 제가 거처하는 오두막 화실 인근의 토지 구입 문제로 이웃 주민과 약간의 마찰이 있었습니다.

이웃인 그분과 살뜰한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도와주며 무난히 잘 지내왔는데, 그날의 언쟁으로 서먹해졌습니다. 

그날 서로가 약간의 예의를 갖춘 언어를 사용하고 서로 지나치게 방어적 태도를 갖지 않았다면 그렇게 큰 언쟁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 나름 가끔 명상을 하고 사물을 생각 깊게 바라보고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적절하게 감정 조절을 하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말입니다.

그런데 언쟁을 벌이며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서로 오해가 있었음을 알고 어색하게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분이 한 말이 다시 생각나고, 역지사지로 그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 분이 나때문에 손해보고 상처 받았을 수도 있었겠구나 이해가 되다가도, 어느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고 나의 마음 상처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잠 못 든 그 밤 새벽녘에 가만히 나를 돌아봤습니다.

남들이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면 별일이 아닌 것을 크게 다투었구나 하는 자책과, 그가 예의를 갖춘 언어가 아니더라도 나는 예의를 갖추어 말할 걸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제대로 인격적이었고 정당했던가 돌아봤습니다.

밤새 분노하고 걱정하고 그 일에 집착하는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의 하찮은 존재가 보였습니다.

명상과 독서와 깊은 생각으로 얻은 이성과 감성의 조화는, 그런 자부심은 헛된 것이란 생각과, 이럴 땐 산전수전 겪은 인생의 깊이가 오히려 더 좋은 치료약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법과 통상적인 사회 도덕성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작은 일에 스스로를 질책하고 부끄러워하는 내면적 도덕성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마음의 갑옷으로 내 스스로에게 뻔뻔함(?)도 정신 건강을 위해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나이 60 중반에, 나름은 고생하며 자랐다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스스로의 뻔뻔함(?)의 부족과 맷집 약함을 자책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의 장점은 남을 배려하고 합리적 판단과 감성과 이성의 조화와 내 나름의 도덕성이라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번의 작은 다툼으로 마음고생 좀 했다고 인생 행로를 바꿀 수는 없잖아요.

하루 이틀 지나고 나니 격한 파도처럼 일어났던 마음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다음을 위해 든든한 마음의 갑옷 하나 준비해둬야겠습니다.

 

 

(2021년 봄. 박영오 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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