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책을 읽다가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는다면, 몇 개월 몇 년을 더 묵혔다가 읽어보세요.
나는 자주 그런 방법을 씁니다.
관심 있는 책을 구매해서 읽다가 쉽게 읽어지지 않으면 책을 책장에 꽂아두고 숙성시키는 버릇이 있습니다.
책장에서 때론 '나 이런 책을 읽은 사람이야.' 하는 장식용이 될 때도 있고, 숙성 후에 다시 읽으면 그때서야, '아! 이 책이 그런 책이었어?' 합니다.
미안하게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책 한두 권도 아직 숙성 중에 있는 데 급히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내가 제법 책을 많이 읽었다고, 책을 읽고 문장을 이해하고 해독하는 능력이 제법 있을거라고 믿겠지만, 사실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스물한두 살 무렵 군복무 중에 읽었던 '어린 왕자'는 문장 문체는 그리 어렵지 않은 데, 책 속의 글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고 무슨 의미인지, 쉽게 쓰인 문장인데도 작가가 독자에게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몰라, 반복해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누구는 헤세 소설 '데미안'을 중학교 때 읽고 감동받았다고 하던데, 나는 늦깍기 대학 시절에 읽었는데도 감동은커녕 어려워서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더군요.
독서 능력만큼은 누구보다 자부했는데, 사실은 내가 좀 느리고 많이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딸아이가 중학교 시절 국어 숙제로 '어린 왕자'를 읽고 감상문을 쓰면서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요청하더군요.
그때 '어린 왕자'를 다시 정독해 읽고 나서야, 비로서 글을 쓴 작가 '생텍쥐페리'의 마음을, '어린 왕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알겠더군요.
딸아이에게 아마 이런 뜻일 거야 설명해 줬지만 알듯 말듯한 표정.
그래, 나도 그랬단다. 어느 순간 그 글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담길거야.
진달래는 추운 겨울을 나야 비로서 봄에 꽃을 피우고 들국화는 봄 여름의 여러 일기를 품고나서야 꽃이 피는 걸, 계절을 가려서 피는 들꽃이 어찌 그냥 피었으리오.
2024년 10월 중순. 박영오 글 사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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