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아내와 함께 갔던 동네 카페에 혼자 갔다.
자주 보던 카페 사장님이 의아한 눈빛을 건넨다.
난 아메리카노 아내는 따듯한 카페라테, 그 공식을 깨고 나 혼자와 카페라테를 주문했더니, 당연히 아내에게 가져다 주려 테이크아웃일 거라고 생각한 듯, '테이크아웃 해드릴까요' 한다.
아니요 마시고 갈 겁니다.
다시 의아한 눈빛을 건낸다.
다음날 딸아이가 카페에 갔더니, 카페 사장님이 "아버님 혼자 오셨던데요?" 하더란다.
아마 걱정스러운 안부일 거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냥 카페 구석에 혼자 돌아앉아 타인의 시선은 차단하고 챙김 없이 생각 없이 창밖 먼산과 지나가는 낯선 타인을 의미 없이 바라보며 뜻 없는 글을 끄적거리고 싶었다.
그냥. 한참을 끄적끄적, 그렇게 의미도 필요도 없는 그 헛튼 시간을 내 안에 담고 왔다.
살아보니 필요 없는 시간과 의미 없는 헛튼 시간들이 모이고 쌓여 가끔 필요한 시간으로 변화되기도 하고 추억이 되기도 하더라.
자주 찾아가는 절집 운람사 스님의, 둘러앉아 차 마시는 나지막한 차탁, 수백 년은 됨직한 느티나무 고사목으로 만든 차탁에 나뭇결이 겹겹이 쌓여 아름답게 춤추고 있다.
나무 안에 촘촘하게 박혀있는 나이테를 바라보며, 그 안에 이 나무의 긴 시간들이 담겨있구나, 생존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려주던 산새의 잠시 머묾, 어느 해 가득 눈 내리던 시간, 또 어느 해 무사히 지나가기만 바랐던 무서운 태풍, 품고 키웠던 수많은 산새와 곤충들,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쉬어가던 나그네의 한숨과 어느 아낙의 눈물.... 그 모든 것이 이 나무 나이테에 담겨 있겠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스님과 차 마시며 슬며시 차탁을 쓰다듬어주며, "나뭇결이 참 아름답네요" 딴청.
그 차탁 나무 나이테 속에 의미 없는 시간이 어디 있으랴.
그런 시간이 쌓이고 그런 세월이 담긴, 의미 없는 시간이 어디 있으랴.
내 나이 일흔이 코앞, 나의 나이테 속에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과 빼내고 싶은 세월이 어찌 없으리오.
돌아갈 수도 어찌할 수도 없어 고스란히 내 몫이라면, 그 헛튼 시간을 단단한 나이테로 간직하리라.
어쩌면 그 헛튼 시간들이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나의 속살이 되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2025년 3월 중순. 박영오 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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