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새벽녘에 읽고 있는 이 책은, 읽다가 자주 책을 손에서 놓게 된다.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어려워서 아니라 책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기게 하고 글을 쓰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구해 처음 읽었을 때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언제 샀더라, 출판연도를 보니 2022년, 한 4년 숙성시켜서 다시 읽어보니 그 사이 맛이 달라졌다.
오랜만에 다시 읽는 맛이 좋다.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이 들어갈수록 숙성돼 간다면 좋겠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재직시절에, 서울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어느 교육연수원 연수 중에, 졸업 후 30년 만에 처음 만난 대학 동기생이 '많이 달라졌다'며 말을 걸어온다.
그 말은 다른 어떤 동기생에게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둘이 서로 친한 사이, 아마 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공유했던 모양이다.
다음 날, 연수원 식당 점심시간 옆자리에 앉아 허튼 말 주고받으며, 같은 직업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는 사이라면 당연한 일, 가끔 사는 소식 전해 들었다며,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말일까 비난의 말일까 아니면 그냥 인사치레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는데, 졸업 후에 처음 만나 사람에게 비난의 말은 아닐 테고, 나는 웃으면서 '와인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니 나도 숙성된 모양이지' 대답했다.
그래, 30년 세월이면 뭐든지 다 변하는 시간.
식사 후에 자판기에서 차 한 잔 뽑아 벤치에 앉아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은근히 자랑하는 거야 누구든 하는 일이지만 이 친구는 대놓고 자랑한다.
마치 무슨 배틀(battle)에서 반드시 이겨야지 하는 그런 자세인 듯, 남편. 아들. 집. 자동차 자랑 등등 할 수 있는 것은 다 꺼내서 자랑한다.
그 친구는 자기는 이래서 행복하고 또 저래서 너보다 더 행복하다는 그런 속내로 말을 이어간다.
소박하게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나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
그런데 친구의 자랑이, 자기는 이래서 불행하지 않고 또 저러해서 불행하지 않다고 감추고 변명하는 것처럼 들렸다.
왜 그렇게 들렸을까, 뚜렷한 이유 없이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다음 날 점심시간 구내식당, 부러 늦게 갔더니 멀리 동기생 뒷모습이 보인다.
못 본 척 딴 자리에 앉아, 마침 옆자리가 비어 있는 룸메이트와 식사하고,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 벤치에 혼자 앉아 멀리 북한산 자락을 올려다보며 대충 손에 잡히는 필기도구로 스케치, 누구도 내 곁에 오지마세요 방해하지 마세요 그런 자세로.
그냥 그게 마음 편했다.
그 친구는 다른 연수 교사와 이야기 나누며, 아마 집. 차. 자식. 남편 자랑하고 있을 테지.
너도 나도 참 많이 변했다.
그러고 보니 그 일이 벌써 10년 전이네.
세월 참 빠르다. 2026년 1, 2월이 쏜살같이 지나가 일 년의1/6이 빠져나갔다.
나는 숙성 중일까 아니면 기억력이나, 팔다리 근육처럼 퇴보하고 빠져나가는 걸까.
그게 어떻든 그게 뭐든 이 소중한 시간을 아껴 쓰며 내 나름 바르게 잘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은 데, 알고 보면 그게 제일 어려운 일.
그래야 하는데, 3월은 1, 2월처럼 그렇게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지 또 다짐해 본다.
나도 참.....
2026년 3월 3일 정월 보름날. 박영오 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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