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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마무리하거나 떠남을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산수화 화첩기행

by 더불어 숲 2017. 9. 13.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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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길안 천지갑산 - 박영오 작 (2017년 9월.  미완성)



저는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주변 정리부터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집안 청소를 한다던가, 아니면 책상서랍 정리를 한다던가, 뭐 그런 일들로 마음의 출정식을 가지는 버릇이 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새롭게 9월을, 가을을 맞이하고 싶어서 책상정리를 하며 불필요한 물건들을 하나하나 버렸습니다.
그런데 한두 번 밖에 쓰지 않은 문구류가 서랍 이곳저곳에 수북하게 쌓여있네요. 차마 버리지 못해 다시 책상서랍에 넣어둡니다.
특히 볼펜이 필통에 가득하고 서랍마다 몇 개씩 들어있네요.
내가 특별히 필기도구에 욕심을 부리거나 모으는 성격은 아닌데, 오히려 편한 볼펜 몇 개에 집착하여 그것 하나만 고집하고 넣고 다니는데, 어찌 쓰지도 않는 필기구가 책상서랍 가득히 쌓여있네요.
버리기는 아깝고 그대로 두기에는 뭣하고....... 몇번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둡니다.

글쎄요.
마음의 서랍에도 필기구처럼 불필요한 것을 잔득 쌓아놓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 잡동사니를 마음의 서랍 속에 간직해, 오히려 그것이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면서도 책상서랍 속에 불필요한 것을 가득 쌓아놓고 살듯이, 나는 아니네, 아니네 하면서도 불필요한 감정을 묵혀두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책상서랍속의 불필요한 것을 툭툭 털어버리듯이 마음속의 짐도 털어버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서랍속의 물건도 특별히 마음먹고 정리하는데도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이 수두룩한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여러 인연과 짐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인생살이 속의 엉킨 실타래를 책상서랍을 정리하듯 툭툭 털어버리고 비워버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아니면 인생살이와 마음이 수학문제처럼 공식에 대입해서 풀리듯이 그렇게 풀리고, 정답이 있고 맞음과 틀림이 분명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을의 시작입니다.
가을은 마무리하거나 떠남과 보냄을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추수를 다한 빈 그루터기만 남은 논밭이 점점 늘어나는 그런 계절입니다.
그루터기만 남은 빈 논밭처럼 마음도 함께 점점 공허해집니다.



(글 그림 박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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