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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 두툼한 책 한 권입니다.

산수화 화첩기행

by 더불어 숲 2022. 12. 19.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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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주왕산(한지에 채색. 2022. 봄. 박영오)

 

 

 

문득,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계절 호들갑 떨지 않고 그렇게 묵묵하게 살고 그렇게 버티고 싶습니다.

나무는 오래 살고 버틸수록 존경 받고 사랑을 받습니다.

오래된 나무, 나무노인을 가만히 살펴보면 상처 가득하고 아픈 둥치와 부러진 가지 등등 도려낼 부분도 많지만 그 속에는 나무가 살아온 지난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도 그러할테지요.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 수많은 경험과 상처 그리고 지금까지 생존하며 삶을 이겨온 생각의 모임이 현재의 나에게 담겨져 있을테지요.

누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현재의 나의 모습은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의 축적입니다.

노인의 경험과 지식이 그다지 필요 없는, 새로운 지식을 따라가기 급급한 4차 혁명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살아온 세월의 깊이만큼 삶의 지혜가 축적되어 있는, 앞서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적 삶의 지혜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나이는 스스로가 많은 지혜를 담고 있는 두툼한 책 한 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60대는 600여쪽 책 한 권이고, 70대는 700여쪽의 지혜가 가득 담긴 책 한 권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그 지혜 중에 중요한 하나는, 젊은 세대에게 보여줄 경험적으로 체득한 삶의 모범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나 자신이 우선 즐겁게 열심히 살아 행복해야함을 전제로, 합리적 이성을 기초로 합리적 생각과 균형적 판단을 하고, 우리 아들세대를 이해하고 다독여주고 위로해주고 안아주고 한걸음 뒤에서 묵묵하게 밀어주고...... 그러고 보니 오래된 나무의 존재처럼 생존과 희생과 침묵 그리고 위로이네요.

나 자신은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지만, 나의 책을 아무도 읽으려고 하지 않지만 나 스스로 나름 60여년의 생각과 지혜를 담고 있는 책 한 권이라고 생각하면 지나친 자만이고 자기애일까요?

비록 허술하고 그다지 읽을거리가 없을지 모르지만 나나 당신이나 각자 나름 지혜를 담고 있는 두툼한 책 한 권입니다.

 

오늘, 올해 들어 가장 추운날씨라고 합니다.

겨울 추위를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상처 가득한, 한 그루 노인나무를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이 추운 겨울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모든 생명체의 가장 기본은 생존과 생활이 먼저입니다.

 

 

(2022년 12월 19일. 박영오 글 그림)

위 작품은 2022년 봄 완성한 50호 정도 크기의 '어느 봄날 주왕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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