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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를 받아둡니다

산수화 화첩기행

by 더불어 숲 2017. 5. 22.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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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상선암 - 박영오 작품 (2013년 여름)



손이 잘 미치지 않는 책상 구석진 서랍 속에 꽃씨가 여러 봉지 들어있더군요.
봉투마다 꽃씨 이름과 채집한 날짜가 적혀있습니다.
봉숭아, 채송화 씨는 그 전해에 받아둔 것이고 나팔꽃과 붓꽃 씨앗은 작년에 받아둔 것입니다.
주인에게 은근히 눈총을 받아가면서 채집한 씨앗인데 서랍 속에 두고는 그만 잊어버렸습니다.


한동안 책에 욕심을 부려 서점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한 권씩 사들고 들어왔는데 몇 해 전부터는 꽃씨에 욕심이 생겨, 길 지나다니며 마음에 드는 꽃이 있으면 눈여겨 봐두었다가 씨앗이 여물 때쯤 체면불구하고 받아둡니다.
그런데 씨앗을 받아두기만 했지 막상 파종해야할 봄에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나갔습니다.
봉숭아는 베란다 빈 화분에 뿌리고 나팔꽃씨는 아파트 울타리 밑에, 붓꽃은 조금 습기 찬 담장 밑에 심어두면 제 알아서 잘 자랄 텐데 말입니다.
꽃씨는 네 땅 내 땅 가리지 않고 뿌린 대로 터 잡고 살 텐데, 씨앗 심을 내 땅 한 평 없다고 소홀 했는가 봅니다.
꽃을 꼭 내 땅에만 심을 필요가 없는데, 들꽃은 내 땅 남의 땅 가리지않고 피는데......

자주가는 절집 마당에 금낭화가 탐스럽게 자라 꽃을 피우더니 콩깍지를 닮은 씨앗을 맺었습니다.
제대로 여무면 씨앗을 받아두었다가 내년에 아파트 주민들이 자주 다는 길섶 화단에 파종하고, 받아둔 나팔꽃 씨는 아파트 울타리 밑에 뿌려야겠습니다.
내년 봄에는 꼭 잊지 않겠습니다.



문득 잊고 있었던 그림을 찾았습니다.

그 그림이 어디있더라, 내가 좋아하던 그림이었는데......

그림 액자를 찾아보고 사진 파일을 찾아보고 그러다가 겨우 찾았습니다.


단양 상선암 풍경입니다.

상선암 현장에서 계곡 물가에 앉아 잠시동안 쉽게 그렸던 작품인데 애착이 갑니다. 

그림은 이 작품을 좋아하던 서울에 있는 조카에게 선물로 보냈고, 사진파일이 남아있어 겨우 찾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기억은 잊어버리고 물건은 잃어버립니다.

그게 삶의 이치이겠지요.


(글 그림 박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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