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는 비바람 몰아치더니, 언제 그랬냐하듯이 이 새벽 달빛이 교교하게 밀려옵니다.
아카시아 꽃향기도 달빛과 함께 조용히 다가와 창문을 두드리며 나를 부릅니다.
이 새벽 그들이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는가봅니다.
저만큼 달아난 잠이 아쉽지 않습니다.
언제 이 달빛과 아카시아 꽃향기와 지극히 고요한 이 풍경과 교감을 나누겠습니까?
거실에서 홀로 이 새벽에 달빛에 취하다가 아예 아파트 베란다로 나가 교교한 달빛과 드문드문 보이는 별을 멀거니 올려다 봅니다.
나도 여기에 있소 하듯 멀리 숲 속에서 소쩍새가 웁니다.
깊은 산 속과 시골마을에서나 들을 수 있는 새소린 줄 알았는데, 이 새벽 시간 아파트 베란다에서 듣습니다.
아카시아 향기와 소쩍새 울음소리, 고요하게 빛나는 달빛이 아까워 잠을 쉽게 다시 들 수가 없습니다.
혹시 잠들면 이 친구들이 다 떠날 것 같아서.......
아카시아 향기에 취하고 소쩍새 울음소리에 취하고 교교한 달빛에 취하고.......
이래저래 만취해 베란다를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벽녘까지 애닮은 소쩍새 울음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계속 들려옵니다.
이왕 놓친 잠, 방에 들어가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다가 다시 베란다에 나와 아카시아 향기를 큰 숨으로 마시거나 소쩍새 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음력 열아흐레 달을 멀거니 바라보면서 이 밤을 다 보내고 있습니다.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에 어둠과 별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지만, 소쩍새는 여전히 슬피 울고 있습니다.
그리 슬픈 일도 없는데 내 마음이 따라 슬퍼집니다.
이 새벽에 홀로 취해있습니다.
교교하게 밀려오는 열아흐레 달빛에, 아카시아 꽃향기에, 슬피우는 소쩍새 울음소리에......
(글 그림 박영오 2017. 5. 14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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