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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억이라고 해서 다 아름답게 변하는 것은 아니더군요

산수화 화첩기행

by 더불어 숲 2017. 6. 30.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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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마등령 겨울 소나무 - 박영오 작품 (2013년 겨울) 




보는 눈앞에서 “툭”하고 방바닥에 떨어뜨린 반지가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더니,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잃어버렸을 때 그때처럼 “짠”하고 다시 나타났습니다.
마음속 생각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반지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가 불현듯 다시 되돌아오더군요.
슬픔은 여전히 슬픔인체로, 기쁨은 기쁨인대로, 기억의 저장고 저편 어딘가 숨어 지내다가 우연한 매개체를 통해 다시 돌아오더군요.

추억은 웃을 수 있다고?
지나면 모든 것은 다 아름다움으로 변한다고?

군에 입대하고 제대하기 전후 그 무렵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져 참 힘들게 지냈습니다.
군에 입대하기 전, 시골집에서 마지막 저녁밥을 먹는데, 쌀이 떨어졌는지 별다른 반찬 없이 보리밥이더군요.
그래도 막내 입대한다고, 집에서 키우던 한 마리 밖에 없는 염소를 잡아서 고기는 삶고 뼈는 푹 고아서 곰탕을 만들어 한 술 뜨라고 하는데, 입대 전날의 찹찹한 마음 때문인지 지지리 궁상의 집안 형편 때문인지 눈물이 스믈스믈 기어 나와, 염소고기에 냄새가 난다는 핑계를 대고 숟가락을 놓고 방을 나왔습니다.
마당에 서서 1월의 차가운 달을 한참동안 멀거니 바라보며 눈물을 훔친 다음에 방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부모님과 형들도 밥상을 물리고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서로에게 미안함과 위로의 말, 작별의 말을 굳이 언어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그 긴 침묵 속에 다 있었을 테지요.
지금 생각하니, 곰국에 밥 말아서 훌훌 떠먹으며 씩씩하게 잘 다녀오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면 남은 가족들의 마음이나 편했을 텐데.......

40년 전의 일인데, 오늘 갑자기 “툭”하고 기억 저편에서 나타났습니다.
지난 일들이 대부분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했지만, 그때는 그게 슬픔인지 아픔인지도 몰랐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아물지 않은 슬픔으로 다시 덧납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슬픔은 슬픔인 채로 서운함은 서운함 대로 남아있네요.



(작품설명 - 지난 겨울,  며칠동안 폭설이 내렸지요. 설악산 마등령 눈 가득한 풍경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이 여름에 설경을 꺼내는 것은. 후덥지근한 이 여름을 잠시 잊고 지냈으면 좋을 듯해서...... 마음이라도 조금 시원해졌는지요? )




(글 그림 박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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