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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득한 소백산을 기다립니다.

산수화 화첩기행

by 더불어 숲 2017. 12. 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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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리 겨울풍경 - 박영오 작 (2017년)





이 나이에도 아직 어린 마음이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일기예보에서 전국적으로 눈이 온다기에 나름 잔득 기대하고 있었는데, 경기도와 영서 지방은 눈이 많이 내렸다기에, 밤늦게까지 자주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눈은 보이지 않고 바람만 몹시 불어옵니다.

눈이 내리면 소백산을 다시 넘어보겠다는 생각을 벌써부터 해왔는데 여전히 다음으로 다음으로 미루고 있습니다.
한참 오래전 젊은 시절에 눈 가득한 소백산을 넘었습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누구하나 발자국을 남겨놓지 않은 눈 가득한 소백산 연화봉, 비로봉 능선을 따라 멀리 떠오르는 일출을 등대 삼아 그렇게 산을 올랐습니다.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던 눈을, 나뭇가지마다 눈을 가득 머리에 이고 첫 새벽을 깨우는 등산객을 환영하듯 후두둑 떨어뜨리던 눈을 미처 아름답다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숨이 턱에까지 차오르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게 느껴질 즈음에는 소백산을 종주하겠다는 목표보다는 희방사에서 연화봉까지는 올라야지, 저만큼 앞에 있는 저 나무까지는 걸어야지, 나중에는 오른발 다음에는 왼발을 옮겨야지 그러면서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헤쳐 가며 비로봉을 거쳐 비로사로 내려왔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종주한다는 목표보다는 멀리 떠오르는 일출이,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이, 눈을 가득 이고 있는 나뭇가지의 아름다움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을 헤치며 능선을 걷는 기쁨이 더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인생도 이처럼 지나고 나서야 그 중요함을 깨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 때 눈 가득한 소백산을 넘지 못하고 중도 포기했다면 물론 후회했겠지요.
하지만 그 과정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리 아름답고 높은 산을 넘어도 아쉬움이 남으리라 여겨집니다.

눈이 내려 다시 소백산을 오른다면 종주한다는 목표에 급급하지 않고 천천히 느끼며 오르겠습니다.
매서운 바람은 바람대로, 무릎까지 빠지는 눈은 눈대로 아름답다 여기며 산을 오르겠습니다.
더 운이 좋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눈이, 나뭇가지마다 눈을 가득 이고 있는 상고대가 있다면, 눈 가득한 능선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는 행운이 있다면 그만한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겠습니다.
미처 소백산을 다 넘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아름다움과 행복을 다가졌는데요.
그래서 늦은 밤 창문을 열고 어린아이처럼 여기도 눈이 오길 바라며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다시 눈 가득한 소백산을 종주하는 꿈을 꾸며 말입니다.

(글 그림 박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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