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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 가운데에서 봄을 기다립니다.

산수화 화첩기행

by 더불어 숲 2017. 12. 1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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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농촌풍경(가송리 부근 마을) - 박영오 작(2017년 겨울)




먼 산의 숲은 이 겨울이 오기 오래 전부터 나뭇잎을 다 떨어트리고 맨몸으로 서있습니다.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부지런히 키워온 제 몸을 미련 없이 다 버리고 맨몸으로 서 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자신을 가볍게 해, 한해의 삶을 마무리하고 숨죽여 봄을 기다리는가봅니다.
사람 사는 삶 또한 그러한데, 우리네 인간은 생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덕지덕지 욕심을 부려 삶을 무겁게 하더군요.

달력을 보니 겨울의 시작이라는 입동(立冬)은 이미 오래전 11월 초순이었고, 소설(小雪) 대설(大雪)이 지나간 지 한참 오래였고 동지를 며칠 앞두고 있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가을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달력의 절기는 겨울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봄은 멀었는데 벌써 봄을 기다립니다.
입춘(立春)은 언제일까?
내년 달력을 살펴보니,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2월 초순으로 잡혀있습니다.
한 겨울에 미리 입춘을 잡아둔 뜻은 봄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의 메시지일 것입니다.
조상들이 절기를 미리 앞서 잡아둔 것은 다가오는 계절을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뜻과 겨울이 이미 지나가고 있으니 희망을 가지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연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다가오는 계절을 준비하는데, 자연이 전해주는 언어와 생체리듬을 잃어버린 인간은 달력을 보고서야 24절기를 깨닫고 지금 어디쯤 오고가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아직 12월 하순이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은 아직 이른데, 달력 앞에 서서 계절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것은 세월의 흐름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나이라서 그러하겠지요.
마음은 여전히 가을에 머물러 있고, 몸은 달력의 숫자대로 겨울 속에 움츠려있습니다.
그리고 머리는 앞서 봄을 생각합니다.
생각이 복잡한 한 초로의 남자가 달력 앞에 서서 헝클어진 계절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글 그림 박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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