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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달빛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편지 보냈습니다

by 더불어 숲 2017. 3. 1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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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달빛이 거실 중간까지 조용히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
일찍 깬 잠이 아깝지 않습니다.
달빛이 아까워서 전등도 켜지 않고 한 참 달빛을 바라보며 서성거렸습니다.

어제(2017. 2. 14일)는 학교에 가서 책상 정리를 했습니다.
마침 봄방학이라서 내가 있는 2층 교무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특별히 가져 올 것은 없었고, 버릴 것은 책상 서랍 가득입니다.
삶의 부스러기이겠지요.
아들 딸이 생일 선물로 보내준 책 몇 권과 아껴 쓰던 컵, 그리고 여행 다녀오며 선물로 준 손에 익숙한 볼펜 하나, 추억과 정성이 담긴 것만 챙겨서 넣고 나머지는 모두 버리거나 남겨두었습니다.
그렇게 미련이 남거나, 슬프거나 아쉬움이 교차하는 그런 감정이 아니라 그냥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무던한 감정?
혹시 여러 사람과 마주치지 않길 그런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빨리 이 공간과 시간을 벗어나고 싶은 그런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그렇게 어제 나의 시간과 공간은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슬프지도, 그렇게 기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기억될 뿐,
어제의 지나간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오직 내 머리 속의 기억뿐일 테지요.
그렇게 어제의 시간은 지나갔습니다.

편지를 쓰다가 잠시 멈추고 베란다에 나가 달을 한 참을 올려다보고 들어왔습니다.
엊그제 보름달이 벌써 반달에 가깝네요.
달빛이 참 곱습니다.
영덕에 근무할 때, 이렇게 달빛이 고우면 차를 몰고 바다로 가끔 나갔는데......
즐겨 찾아가는,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달빛에 잠긴 바다를 한 참 바라보다가 출근 시간 무렵에 돌아오곤 했는데.......

특별한 목적 없이, 무엇을 생각하거나 무엇을 얻거나 그런 생각 없이 그저 바다에 내리는 달빛을 바라보다 왔습니다.
그냥 그 시간이 좋았습니다.

내가 가질 수도 없고 보관할 방법도 없는 것이라면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누리고 저장하자.
그래야 기억의 창고 속에서도 아름답게 간직된다. 뭐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감상적 생각들이 유치하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새벽 4시 무렵부터 바라본 달빛은 지금 쓰고 있는 편지 속에 담기겠지요.

이 글을 읽을 당신에게도 지금 내 마음에 간직되는 고요한 달빛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2017.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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