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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불치병일까요?

그림 이야기

by 더불어 숲 2017. 3. 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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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사택에서 이른 새벽에 문득 잠을 깨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합니다.

홀로 이 새벽을 지키고 있다는 뿌듯함이 들 때가 있고 때로는 외롭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외롭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이 외로움이 어디서 왜 오는지를........

외로움에서 벗어났다 싶으면 다시 마음속에 슬며시 스며들고, 잊었다 싶으면 스믈스믈 기어 나옵니다.

 

때로는 이 외로움을 즐기기도 하지만 이 공허함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대신해주거나 누구도 치료해줄 수도 없는 불치의 병인가 봅니다.

그런데 이 병은 나 혼자만의 병은 아닌듯합니다.

남성들에게는 원시시대부터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홀로 사냥에 나가거나 전투에 나가야했기에,

원시시대부터 형성된 외로움이란 유전인자가 몸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가 때가 되면 슬며시 나타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이라면 차라리 즐기자.

책을 읽을까?

아니면 조용히 명상에 잠길까?

그것도 아니면 차라리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릴까?

이런, 마음속에서 길을 잃어버렸네요.





정선이 분명 청하현감으로 재직했을 때 그렸을 ‘내연 삼용추도’입니다.

‘내연 삼용추도’는 포항 청하 내연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연산폭포, 관음폭포, 잠룡폭포를 ‘삼용추’라 하는데, 이 세 폭포를 연이어 그린 진경산수화입니다.

 

겸재 정선은 2년 남짓 청하현감으로 재직하면서 보경사를 픔고 있는 내연산을 오르내리며 내연산 12폭포를 화폭에 담았습니다.

내연산 12폭포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삼용추를 여러 번 화폭에 담아 정선의 ‘내연삼용추도’는 몇 점의 작품으로 남아서 전해집니다.

나도 내연산 삼용추를 그려보고 싶어 몇 번이고 내연산에 올라 스케치하고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삼용추, 이 세 폭포를 한 컷의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폭포가 연이어 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결국 여러 번 산에 오르고 답사하여 마음에 담아야 그릴 수 있는 풍경입니다.

금강산도 한 폭에 다 담아낸 겸재의 눈이라면 이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듯합니다.



겸재의 '내연삼용추도'의 작품을 자세히 뜯어보면, 붓놀림에 거침이 없습니다.

어느 한곳 주저함이 없이 쓱쓱 위에서부터 그려 내려와, 폭포의 물이 흘러내리 듯 바위 또한 거침없이 흘러내리다가 잠시 멈췄다가 물길따라 다시 내려가 잠룡폭포 마지막에 힘있게 멈췄네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이 그림에서 붓에 들어간 힘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초보운전자 처럼 목과 어께에 힘이 잔득 들어간 긴장된 그런 힘이 아니라,

붓과 종이 그리고  겸재와 하나로 어우러져 발생한 몇 배로 증가한 힘이 아닐까요?  

   

내연산 삼용추를 직접 보고 온 사람이라면, 세 폭포를 한 폭의 그림에 담은 정선의 ‘내연삼용추도’를 본다면 “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하고 무릎을 탁치며 감탄하겠지요.

그림 가운데 두 갈래로 떨어지는 관음폭포가 조금 과장되게 표현되었지만 그림의 분위기와 실경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선의 ‘내연삼용추도’ 이 작품은 수량이 많았을 여름 무렵인지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가 그림으로만 봐도 시원합니다.

폭포 물소리와 물보라를 머금은 시원한 바람이 그림 밖으로 뿜어져 나와서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에게 울렁찬 소리와 물보라가 전해지는 듯합니다.

 

그림 속에는 관음폭포에서 연산폭포로 오르기 위한 사다리가 보이는데 지금은 작은 현수교를 설치해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폭포를 바라보며 쉬어가는 곳이 같은지, 갓 쓴 선비들이 쉬고 있는 너럭바위 위는 요즘도 답사객이 반드시 쉬어가거나 폭포를 바라보는 장소로 애용하는 곳입니다.

옛날 사람들이나 현재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자연풍광을 바라보는 시점이나 관점, 잠시 쉬었다가는 곳마저도 일맥상통 하는가 봅니다.

사람 사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디든 다들 비슷비슷 하니까요.

그런데 가장 위쪽 연산폭포 오른쪽 위에 작은 암자나 정자 같은 건물이 보입니다.

지금은 없는 건물인데, 그 터라도 아직 남아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정선의 그림 속에는 갓 쓴 선비나 나귀를 타고 가는 사람이 자주 등장하는데, 분명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을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어디 다녀오면 기념촬영을 하거나 불로그에 올리려고 인증 샷 하듯이 말입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일행 모습도 화첩에 담아서, 요즘 사람들이 사진을 보며 그때를 추억하듯이 겸재도 그리하지 않았을까요?

내연산 폭포 보러 갔을 때 누구누구와 같이 갔는데 하며 말입니다.

 

올 봄에 내연산에 다시 올라 나도 ‘내연삼용추’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이왕 가는 것, 수량이 많을 때가면 겸재의 '내연삼용추도'와 같은 풍경이 아닐까싶습니다.

그때 다들 같이 가실거죠?




포항 내연산 삼용추 사진입니다. 연산폭포, 관음폭포, 잠룡폭포 입니다.



201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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