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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고요의 경지에서는 외로움이 필연적인 것일까요? (김홍도의 총석정)

그림 이야기

by 더불어 숲 2017. 3. 20.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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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자유 절대 고요의 경지에는 진한 외로움이 필연적으로 따라 오는 것일까요?

경북 영덕에는 동해안 바닷가를 따라 걷는 불루로드라는 올레길을 닮은 길이 있습니다.

영덕으로 전근오고부터 그 길을 가봐야지, 걸어봐야지 하면서도 며칠 전에서야 한 부분을 걸었습니다.

경정리에서 축산 죽도산까지, 그리 바쁜 일이 없기에 쉬엄쉬엄 걸었습니다.

휴가철이 아직 먼 평일이라서 그런지 그 길을 오고갈 동안 내내 혼자 걸었습니다.

혼자 걷는 길은 외롭지만 외로운 만큼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여행의 참맛은 낯선 풍경, 그리고 간섭하는 사람 없는 자유와 적당한 외로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주 혼자 산에 가거나 길을 걷는 것을 즐겨합니다.

혼자 걸으면 침묵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걸을 만큼 걷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어서 좋습니다.

조금 외로우면 어떻습니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그 시간이,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는 그 시간이 오히려 소중합니다.

가끔씩 고독과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런 시간이 나머지 번잡한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밀려오고 파도와 그 파도소리가 걷는 내내 눈앞에 있고 같이 따라옵니다.

바위턱에 걸터앉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도 시계를 흘끔 보며 은근히 보채는 길동무가 없어서 좋고, 가끔씩 지나가며 건성으로 말 건네는 나그네가 또한 없어서 좋습니다.

한 두 시간 정도 걷는 그 오솔길에는 숲과 바다가 같이 걷고 따라와 길동무가 없어도 그리 외롭지도 심심하지도 않습니다.

가끔씩 절대 자유 절대 평화의 경지를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그림처럼 작은 산, ‘죽도산에는 내가 걸어온 길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등대를 가진 전망대가 있습니다.

 

죽도산 등대 밑에는 지친 몸을 쉬었다 갈 수 있는 소박한 카페가 숨어있습니다.

번잡한 휴가철이 아니면 찾는 사람이 드물 것 같은 그 카페에서 지나간 팝송이, 때마침 내가 좋아하는 비틀즈의 예스터데이가 발길을 잡습니다.

휴가철이 아닌 해거름에 손님이라고는 오직 나 혼자뿐인 카페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흘러간 팝송을 들으며 마시는 따뜻한 커피 맛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뒤돌아볼 수 있는 과거가 있고, 그 속에 추억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겠지요.

 

고독과 외로움의 대칭선에는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이 서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진한 외로움이 따라오는 절대자유 절대고요의 그 끝자락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가만히 서있습니다.

세상살이 번잡함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와 삶의 길을, 그리고 사랑을 절대자유 절대고요가 찾아주더군요.

사람은 홀로 살아가는 동물이 아니기에 역설적으로 가끔은 혼자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 참!

내 자동차가.......

다시 그 길을 되걸어가야 하나?

시골에 택시라도 있을까?

어두운 죽도산 등대를 더듬거리며 내려오며 온갖 걱정에 쌓여있는 현실세계로 돌아옵니다.

 


정선 총석정

김홍도 총석정


이인문 총석정



위의 세 작품은 지금 북한 땅 강원도 통천에 있는 '총석정'을 소재로한 그림입니다.

같은 소재의 각기 다른 느낌의 그림입니다.

어느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셋 중에 한 작품을 가질 수 있다면 어느 작품을 갖고 싶나요?

저요?

저는........ 물론 셋다 좋은데....... 김홍도 작품을 가장 갖고 싶네요.

 

세분 모두 화성(畵聖)으로 추앙 받는 분이라 감히 평하기 어려운데......

정선의 그림은 먹색이 조금 혼탁하고 총석정의 현무암 주상절리의 표현이 너무 단순화 시켰다는 느낌이 드네요.

가장 아래 이인문의 작품은  푸른 색감도 좋고 넘실거리는 동해 바다 표현도 빼어나고 정말 좋은 작품인데, 화장을 잘한 미인을 보는 느낌이랄까?

화장을 지운 민얼굴도 그리 예쁠까? 뭐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가운데 김홍도의 작품은 먹과 물을 적당히 섞어서 먹색이 담백하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듭니다.

그리고 주저함이 없이 시원시원하게 그려 그림 속에서 붓의 속도감과 힘이 절로 느껴집니다.

색을 칠한 듯 마는 듯 은근함이 배여있어 저 개인적으로 더 좋아보입니다.

당연히 저 개인적인 취향일 뿐입니다.

 

솔직히 세 작품을 보며 고민 많이 했습니다.

진짜 내가 이 그림 중에 한 작품만을 얻을 수 있다면 어느 작품을 선택할까?

정선은 진경산수화의 초석을 놓은 대가이기에 당연히 탐납니다.

그리고 김홍도 작품을 얻을 수 있다면 나만 소유하고 간직하고 싶고 혼자 볼 수 있는 서재에 걸어두고 싶습니다.

이인문 작품은 손님이 오면 눈에 가장 잘 띄는 거실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 글을 써놓고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모르겠습니다.

 

동해의 푸른 바다가 보이나요?

바위에 부딪쳐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보이고 그  파도소리가 들리나요?

사람 인기척에 놀라 날아오르는 바닷새가 보이나요?

사람 하나없는 동해바다의 그 적막함이 느껴지나요? 

정선이, 김홍도가, 이인문이 한양에서 홀로 천리 먼 길을 걸어와 마침내 관동팔경 중에 하나인 총석정을 마주한 느낌이 드시나요?

바다에 뛰어내릴 정도의 숨막힌 아름다움이 전해지나요?

총석정 대청마루에 앉아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화가의 절대자유와 절대고독이 느껴지나요?

한참이 지나고 동해의 스산한 바람을 맞으며 화첩을 펼치고 먹을 갈아 드디어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심정이 느껴지나요?

내가 언제 다시 여기에 오려나 하고 화폭을 접고 일어서서 차마 떠나지 못하고 동해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화가의 모습이 보이나요?

 

이 그림을 보며 그 마음이 전해진다면 당신은 진정한 예술가이고 상당한 고수입니다.  


201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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