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 봄, 매화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김홍도 주상관매도)

그림 이야기

by 더불어 숲 2017. 3. 20. 00:16

본문



어라! 매화가 피었습니다.

어제는 교직원 회의가 있는 월요일이라서 급하게 출근하는데 언 듯 보니, 어느 집 초라한 담장 곁에 매화가 피기 시작하더군요.

올해 첫 매화가 궁금해 근무하는 내내 눈에 밟혔는데, 신학기 초라서 잔득 밀린 일을 처리하다가 보니 밤늦은 시간에 퇴근하게 되어 미처 보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출근길에 여유를 가지고 다시 보니 하룻만에 만개했습니다.

아직은 겨우 남녘에서 매화소식이 들릴 듯 말 듯 한데, 매화 한그루가 나처럼 조급한 사람들을 위해 먼저 꽃을 피워주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향기 맡으며 천천히 바라보고 싶은데, 남의 집 담장 안이라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옛 사람들이 매화를 좋아하고 즐겨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가장 이른 봄에 피는 매화의 고고한 자태와 향기 때문이기도 하고, 매화에 얽힌 고사처럼 초야에 묻혀 속세의 일에 벗어나 고고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동경하는 옛 사람들이 매화의 매력에 푹 빠지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옛사람이나 오늘날이나 매화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긴 겨울의 끝을 알리는, 이제부터는 누가 뭐라고 해도 봄이라고 선언하듯, 따뜻한 봄을 불러오는  매화를 애타게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요?

오리털로 가득 채운 두툼한 옷에다가 난방 시설이 잘된 곳에 지내면서도, 몇 걸음만 옮겨가도 차를 이용하면서도 “춥다, 춥다.” 하면서 겨울을 힘들어 하는데, 얇은 무명옷으로 버텼던 옛 사람들은 겨울이 오죽했을까요?

길고 모진 겨울의 끝을 알리는, 아직은 잔설이 남아있고 더러 춥기도 하지만 이내 따뜻한 봄이 다가옴을 알려주는 매화가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시도 때도 모르는 어리숙한 나도 이 봄의 매화가 이리도 반가운데........





위의 그림은 김홍도의 ‘주상관매도’입니다.

배 위에서 매화를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그림이 참으로 소박하고 단순해서 오히려 그림의 주제가 더 명확해집니다.

강가 절벽 위에 핀 매화를 바라보기 위해 배를 띄우고, 따뜻한 봄 햇살 속에 술상을 차려놓고 이미 몇 순배 술잔이 오고갔는지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은 멀리서 봐도 취기가 가득합니다.

취할대로 취해 “이제 술은 그만 됐다.” “매화나 바라보자꾸나.” 하는 듯합니다.

그말에 술을 권하던 하인은 술잔을 든채 고개를 들어 매화를 바라봅니다.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의 시선이 물끄러미 절벽 위 매화로 향해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쓸슬해 보일까요?

나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요?

노인의 마음이, 내년에도 저 매화를 볼 수 있을까 그런 심정인 듯 합니다.

 

그런데 배가 슬쩍 기울어졌네요.

아마 매화를 오래 바라보기 위해 배를 기슭에 정박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김홍도라면 배가 물결에 따라 떠내려가는 것이 아님을, 기슭에 기우뚱하게 정박해있음을 알리려고 그렇게 그렸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숨은그림찾기 하듯이 말입니다.






위의 그림은 19세기 중엽 ‘전기’라는 분이 그린 ‘매화초옥도’입니다.

그림 제목을 굳이 풀이하자면 ‘매화꽃이 핀 초가집’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오른쪽 화제를 풀이하면 친구인 역매 (오경석)을 찾아간다.

뭐 대충 그런 뜻일테지요.

 

춘설이 남아있는 이른 봄, 친구가 사는 초가집에 매화가 가득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길을 헤치고 친구인 ‘역매’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입니다.

푸른 옷을 입은 친구는 매화가 보이고,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가 보이도록 아직 추위가 남은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피리를 불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붉은 도포를 입은 친구 ‘전기’는 가야금을 메고 서둘러 친구 집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풍경은 상상으로 맡기겠다는 의미일 테지요.

이미 차려진 주안상을 마주하며 술잔에 매화 꽃잎을 띄우고, 피리와 가야금으로 주거니 받거니 음악에 취하고, 매화 향기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우정에 취해 그 밤을 다 지새웠지 않았을까요?

 

이 그림 속에는 당나라 ‘맹호연’이 당 현종의 부름을 뿌리치고 매화를 찾아나서는, ‘파교’라는 다리를 건너 매화를 찾아 나선다는 '파교심매' 고사와, 송나라 ‘임포’가 매화나무 가득한 계곡 초옥에 살면서,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아 평생을 고고하게 살았다는 중국 고사가 그 밑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2013년의 매화가 피기 시작합니다.

매화를 그림으로 담지는 못하지만 가득 느껴 보겠습니다.

해마다 봄마다 매화를 가슴에 담는다고 해도, 우리네 평균연령으로 따진다 해도 앞으로 스물댓번 정도 될까요?

이 봄, 매화가 지기 전에 매화 향기에 가득 취해 보겠습니다.

 

 2013. 3. 12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