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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안면암에서

한 줄 오두막 편지

by 더불어 숲 2023. 7. 8.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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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클래식 연주 음악회인 줄 알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시골마을 노래자랑 무대였습니다.
'안면암' 덩치큰 건물 크기에 비해 정교함과 정성이 부족한 듯했습니다.
몇 개 큰 콘크리트 불탑 건물과 철제기둥 일주문 건축비용으로 자그마한 암자 하나 지어서 정성을 기울이고 예술적 가치를 더해 차츰차츰 외연을 확장해 나가면 안 되는 걸까요?
자그마한 섬 사이에 부표처럼 불탑을 띄울 안목이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했을텐데....
적어도 종교적 건물이라면 간절한 염원을 담아 주춧돌 하나 놓을 때 기도하고, 서까래 하나 얹을 때 108배하는 심정으로 한 땀 한 땀 그렇게 만들고 가꿔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 감히 나 같은 평범한 소시민 생각으로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숨은 이유가 있었을까요?
효율성 가성비 가시적 효과 그런 도구적 가치를 따지기 보다 느리지만 정교성 예술성 시간의 축적 그런 본래적 가치를 추구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이제야 갯벌에 밀물이 밀려오는 것을 진행형으로 봤습니다.
누구는 밀물로 작은 섬에 걸어 들어가지 못함을 아쉬워했고 우리는 밀물이 차오르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낯선 누구는 썰물로 갯벌 위에 얹혀있는 불탑 가까이 가보길 소망했고 우리는 밀물 만수위로 불탑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을 간절히 보고 싶어 했습니다.
짧은 여행은 찰나적 시간이 가져다주는 우연이 그날의 여행 풍경을 결정하는 듯합니다.
만수위를 기다렸습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여행자를 위해, 쌍둥이 섬 사이 얼기설기 만든 철제 불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나무그늘 아래에 의자 몇 개를 놓아두었습니다.
그 의자에 앉아 작은 엽서에 펜으로 쌍둥이 섬 사이 불탑을 그리며 기다렸습니다, 물이 차오르기를.
어느 여행객이 화가인가 물어봅니다.
대충대충 펜으로 급히 그리고 있어 화가이냐 물음에 쉽게 대답할 수 없어 그저 웃었습니다.
밀물이 서서히 밀려옵니다.
'밀물', 단 두 음절의 함축된 이름 글자에 의미와 형상 모든 것이 담겨있어 '밀물' 그 단어에 감탄합니다.
나는 '계란'을 사지 않고 '달걀'만 먹으려고 합니다.
닭의 알 '달걀'이, 닭 '계' 알 '란' '계란鷄卵'보다 더 예쁜 이름이라 계란보다 달걀이 더 맛있습니다.
'밀물'을 어려운 한자어로 이름하지 않아 정말 다행입니다.
익숙하고 예쁜 한자어도 많지만 '밀물' '썰물'은 무엇으로 대신할 수 없을 듯합니다.
예쁜 이름을 짓고 지금까지 불러준 조상님들이 감사합니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을 언어의 유희 말장난으로 가득 채워놓을 동안 밀물이 밀물처럼 밀려와 불탑을 서서히 띄워 놓았습니다.
여행자는 언제나 시간이 아쉽고, 언제나 지켜지지 못할 약속 '다시 와야지'를 쉽게 말합니다.
"오늘이 보름 무렵인데 날이 흐리네..... 보름달 달빛 속에 떠있는 저 불탑이 보고 싶어, 우리 나중에 다시 오자"
뻔히 지키지 못할 약속을 말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돌아가야 할 길이 300km 넘는 거리, 내비게션이 시키는 대로 어둠 속을 달려오며 내내 떠나지 않은 생각 하나, 태풍 불고 파도 거칠게 몰아치면 부표처럼 떠있는 바닷가 불탑은 어떻게 견딜까?
섬 이름을 몰라서 그저 쌍둥이 섬이라고 내 마음대로 이름하는 그 섬 속에 한 사람 겨우 비집고 앉을 아주 작은 기도방 하나 마련해서 밀물 시작하기 전에 걸어 들어가 가난하고 아픈 중생들 보살펴 주시길 부처님께 밤새 간절히 기도하고 다음날 썰물 때 걸어 나가는 그런 스님 모습을 그려봅니다.
예수님이 황야의 거친 모랫바람을 맞으며 가난하고 아프고 소외당한 그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같이 아파했듯이, 우리 사회 속에서 아픔과 가난이 부끄러워 숨어있는 소시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그런 스님을 그려봅니다.
하드웨어는 형편없어도 소프트웨어는 그러하다면 참 좋을 텐데.
겉모습이나 속마음이나, 나는 그러지 못하면서 이런 생각 저런 마음으로 긴 거리를 달려 집 가까이 왔습니다.
이제는 그런 꿈같은 상상은 접어두고 내 차를 아파트 주차장 어디에 비집어 세울까 걱정하는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표어는 2002년 월드컵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닐 테지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가난한 서민을 진심으로 먼저 돌보는 예수님 부처님 같은 성직자를 기다리는 것은 이뤄질 수 없는 꿈은 아니겠지요.

 

 

2023년 7월 2,3일 안면도 태안반도 여행. 박영오 글 그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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