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시작점, 장맛비 잠시 주춤거리는 틈새, 태안 바닷가 천리포 수목원을 찾았습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 바닷물에 담궈 물감을 들인둣 짙은 푸른 코발트색 수국이 길섶과 낯선 집 울타리마다 한창입니다.
낮은 구릉과 서해 바다를 좌우 몇걸음 사이에 품고 있는 안면도 태안반도,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국도를 따라가다가 보면 작은 포구가 점처럼 이어집니다.
포구마다 그 이름 참 정겹네, 백리포 만리포 그 사이에 천리포 수목원이 서해 바닷가에 기대어 꽃을 품고 나무를 키우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저곳은 꼭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 장마 틈새를 비집고 이제서야 왔습니다.
수목원의 꽃과 나무는 급히 옮겨온 전시 행사용 나무가 아니고, 긴 세월을 심고 가꿔온 수목이라 어색한 티 하나 없이 있을 자리에 꼭 있습니다.
잠시 앉아서 쉬어가란 듯, 큰나무 그늘 아래에 의자 하나씩 품고 있습니다.
꽃은 국군의 날 열병식하는 군인들처럼 줄 맞춰 열 맞춰 줄지어 서있지 않고, 스스로 터 잡고 자란 야생초처럼 그렇게 꽃 피우고 있어 마음이 스며듭니다.
마치 지금은 수국꽃 계절이란 둣 수국꽃이 주류를 이뤘고, 나도 여기 있습니다 하듯 다른 여러 꽃이 반겨줍니다.
우리 집 마당에 자라는 꽃을 여기서 보니 반가워 출석 부르듯이 이름을 볼러줍니다.
너는 에케네시아. 루드베키아 그리고 넌 바늘꽃. 서양 원추리 그리고 넌 처음 보는 꽃인데 이름이 뭐지?
수목원과 딱 어울리는 소박한 카페, 땀 훔치며 쉬어갑니다.
월요일 비교적 이른 시간이라 드문드문 지나치는 사람들, 수목원도 카페도 한적합니다.
오랜 시간 눌러앉아 있어도 전혀 눈치볼일 없기에, 몇 팀이 우리 곁에 앉아 번갈아 수다 떨고 갈 때까지 쉬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 야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우리 자리가 탐나는지, 언제 일어나나 표정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엽서에 펜으로 수국꽃 형상 추상화(?) 그림 그리고 시답지 않은 감상 글 몇 줄 보태며 오래오래 쉬었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가 이렇게 맛있는 것은 후덥지근한 날씨와 적당히 쉬어가는 타이밍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꽃향기 가득 찬 나무그늘 곁이라서 그런가?
카페 종업원에게 물었습니다.
다시 온다면 어느 계절에 올까요?
수국이 피기 시작하는 이 무렵이나 5월 초순 무렵이 좋다고 합니다.
5월 초순이면 우리 손녀 생일 무렵이네.
그래 2, 3년 후 5월 초순에, 아장아장 걸어 다닐 소희 손잡고 다시 오자.
2023년 7월 초순 박영오 글 사진
다음에는 편히 쉬었다가 가렴 (2) | 2023.07.11 |
---|---|
안면도 안면암에서 (0) | 2023.07.08 |
적당히 가식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1) | 2023.06.30 |
그의 시로 밥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 (1) | 2023.06.26 |
조금은 자신에게 뻔뻔해지라고 말했습니다 (2) | 2023.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