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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문득 3 - 공항 출입국 심사대 앞에 서면

여행지에서, 문득

by 더불어 숲 2017. 4. 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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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톤렙삽 호수 (사진 박영오 2017. 4월)



외국에 몇 번 안 나가봤지만 공항 출입국 심사대 앞에 서면 괜히 주눅이 든다.
괜히 죄지은 사람처럼 두근두근 거린다.
혹시 가방 속에 뭐 잘못 넣은 것은 없는지, 혹시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난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살만큼 살고 적당히 용기도 있고, 죄라고는 교통범칙금 이외는 없는 내가 그러한데......
그런 두려움은 경험이나 학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전인자 속에 들어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수많은 침략을 당하면서, 국가 권력에 끊임없이 침탈 당하면서 유전인자 속에 녹아든 것은 아닌가 싶다.

한 번도 호랑이를 본적이 없는 멧돼지들이 동물원에서 녹음해 온 호랑이 울음소리에 벌벌 떤다고 하지 않는가.
수 천년동안 이어져 온 먹이사슬에서 자연스럽게 유전인자 속에 배여있는 두려움일 것이다.

말이 통하는 우리나라도 그러한데 외국에서는 더 긴장이 된다.
우리보다 더 잘사는 선진국에 갈 때는 더 긴장 한다.
괜히 주눅이 들어, 무슨 말이라도 걸어오면 어떻게 하지 걱정한다.
그런데,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가면서 그런 걱정이 조금 덜하다.
이게 무슨 심사란 말인가?
조금 더 잘사는 나라 국민의 허세란 말인가?
저가 항공을 타고 검소한 여행을 가면서 이건 무슨 허세란 말인가?
앙코르와트라는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신전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를 만든 민족이다.
한때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했던 나라다.
그래 캄보디아에 가면 겸손한 마음으로, 그게 사람이든 유적이든 자연이든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서자.
우리 모든 인간은 경이로운 유적 앞에서, 자연 앞에서 작은 미물일 뿐이다.

1열에 6석 밖에 안 되는 작은 비행기가 몹시 흔들린다.
안전벨트 램프가 계속 꺼지질 않는다.
기장이 난기류에 기체가 흔들린다고 안전벨트를 매고 앉아 있으라고 안내방송을 한다.
자연 앞에서는 모든 인간은 나약 존재이다.
그 누구든 지극히 나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철학자 파스칼 말처럼 나약하지만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나약한 존재인 동시에 위대한 존재이기도 하다.
나약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갖고 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한 인간이 캄보디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쌘 척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다.
이 여행이 무사하길,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앙코르와트로 가는, 5시간의 밤 비행시간 동안 흔들리는 기내에서 문득문득 든 생각을 글로 옮겼다.

2017년 3월 28일 (21 : 45) 인천공항에서 캄보디아로 가는 서울항공 기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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