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도솔암 - 박영오 작 (2013년 봄)
지나갑니다.
슬픔이 지나가고 기쁨은 떠나갑니다.
사랑도 미움도, 참을 수 없을 분노도 시간이 지나니 그 마저 수그러듭니다.
한차례 소낙비처럼 그렇게 지나갑니다.
저 비가 언제 그칠까 염려하지 않더라도 제 알아서 떠나가고 지나갑니다.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한줄기 소낙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너도나도 허겁지겁 처마 밑으로 비를 피했습니다.
참 오랜만입니다.
낯선 곳, 낯선 집 처마 밑에서 소낙비를 피해 본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릅니다.
시원스럽게 내리는 비를 별 의미 없이 바라봅니다.
그리 바쁜 일도 없기에, 언젠가는 그치겠지 그런 마음으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별다른 의미 없이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 모습, 소낙비가 숲을 흔들며 지나갈 때 소리 내어 우는 모습, 처마 밑에서 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갑자기 마음속에 아름답게 각인됩니다.
그 짧은 시간이 영원의 시간처럼 느껴지며, 그 모습들이 정지화면처럼, 사진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내 마음속에 담기더군요.
마치 또 다른 내가 나를 벗어나 아득한 과거로 돌아가 그 장면을 다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처마 밑에서 소낙비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 잠시 동안 영원한 시간처럼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이내 소낙비는 그치고, 꿈결처럼 아득했던 생각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다들 제 갈 길로 돌아갑니다.
경주로, 포항. 청송. 안동으로, 각자 손을 흔들며 다음 모임에서 만나자며 그렇게 떠나갑니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떠나갑니다.
사랑과 미움도, 슬픔과 기쁨도, 그리고 사람도, 세월도, 마치 한줄기 소낙비처럼 그렇게 지나가고 떠나갑니다.
다들 머물 만큼 머물다가 제 알아서 떠나갑니다.
지겹다 지겹다 하는 힘든 시간도 때 되면 지나가고, 아쉽다 아쉽다 하는 행복한 시간도 결국 떠나갑니다.
그 모두가 떠나가고 지나갑니다.
그리고 다시 다가오지요.
이 지겨운 더위가 가을이면 제 알아서 떠나갔다가 내년 여름이면 다시 돌아오듯이 말입니다.
나도 머물다 떠나가는, 광대한 우주 속 티끌 같은 먼지일 뿐이기에 어쩌면 이 순간이 소중하고 더 소중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네 인생을 소중하고 감사히 여기며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 그림 박영오)
가을이 다가오는 계절입니다 (0) | 2017.08.23 |
---|---|
내 마음 나도 몰라 (0) | 2017.08.20 |
마당 넓은 집 (0) | 2017.08.10 |
고놈 참 신기하네...... (0) | 2017.08.02 |
비오는 날, 우연이라도...... (0) | 2017.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