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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들풀에서 다음 생(生)을 바라봅니다.

산수화 화첩기행

by 더불어 숲 2018. 1. 2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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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운달산 암자 가는길에 만난 '당포리 겨울풍경' - 박영오 작 (2017년 12월말)





문경 운달산 일월암




작년 2017년 끝자락에 문경 운달산에 있는 작은 암자를 찾아갔습니다.
처음 가보는 암자라서 물어 물어서 어렵게 찾아갔지만 스님이 출타 중이라 외롭게 산사(山寺)만 홀로 있더군요.
깊은 산속 빈 암자에는 풍경소리만 간간히 울려 낯선 여행객을 위로해주었습니다.
혹시나 스님이 돌아오시지 않을까 싶어 암자 마당에 서성거리면서 먼 산을 내려다보며 기웃거렸습니다.

빈 암자에서 겨울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 숲을 멀거니 바라봅니다.
겨울나무는 마저 남은 낙엽을 다 떨구고 맨 몸으로 겨울을 마주하고 있고 마른 풀은 다음 생(生)을 준비하며 봄을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나무는 묵은 잎을 다 보내고 나서야 새 잎을 얻는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한 부분을 보내는 나무나 떨어지는 낙엽이나 그저 무던해 하지 않았을까요?
세상의 이치를 다 알고 있다는 듯 허세를 떠는 인간은 떠남을 애닮아 하는데, 낙엽은 저 스스로 가야할 길을 알아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을 품습니다.

한 겨울 산을 오르면 서리와 눈을 이고 있는 들풀이 풀죽어 있거나 메말라 있습니다.
사람들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바람 불면 부는 대로 잠시 휘어졌다가,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숨죽여 지내며 찬란히 꽃 피우고 씨앗을 맺었을 들풀이 이제 찬 서리를 맞아 생명을 다해 겨울 한 가운데를 버티고 있습니다.
바람 따라 자신이 닿은 곳이 당연히 살아야할 땅이라고 여겨 불평 한마디 없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 씨앗을 맺었겠지요.
가뭄이 몹시 심한 지난 여름에 숲을 염려했는데 지나고 나니 괜한 걱정이었다 싶습니다.

한 겨울 산야, 메마른 들풀 끝에 맺혀있는 씨앗을 보고 또 다른 생명의 잉태를 봅니다.
그 씨앗 또한 발길 닿는 대로 인연이 있는 곳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겠지요.
수 천년 수 만년을 그래왔듯이.......

겨울 숲을 바라보며 소멸과 생성의 자연 섭리 앞에 겸허하게 마주 서 봅니다.
불교에서는 생(生)은 윤회 한다고 합니다.
그 윤회와는 다르겠지만 몇 만년동안 씨앗에서 씨앗으로 이어지는 생명을 보고 문득 윤회의 한 부분을 보는 듯합니다.
한 겨울, 스님 없는 작은 암자에 잠시 머물며 숲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나무와 생명을 다한 들풀에서 다음 생(生)을 봅니다.


(글 그림 박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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