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헤어짐은 언제나 애틋합니다

그림 이야기

by 더불어 숲 2017. 3. 19. 23:33

본문

불교의 기초교리 중에는 삼법인(三法印)이라고 있습니다.
부처님(석가모니) 여러 말씀 중의 하나로, 이것은 3가지 법으로서 도장까지 찍어 확실하다고 교단에서 증명한다는 법이지요.
그 첫째가 제행무상(諸行無常)입니다.
‘제행무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뜻입니다.
고정된 가치와 실체는 없다는 말이지요.
자연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지능지수가 가장 높고 주위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능력이 있기에,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실체 중에 당연히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동물입니다.
빨리 변화하는 인간이란 존재에서 내면 속에 숨어있는 그 마음은 또 어떨 것 같습니까?
아마 다른 동식물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마음은 거의 빛의 속도로 수시로 변한다고 보지 않을까요?

아내는 처음 만나서 사랑하고부터 지금까지 자주 나에게 물어봅니다.
“나를 사랑해?”
아내와 처음 연인으로 만났는지 30년이 넘습니다.
나의 대답은 30년 동안 한결 같습니다.
“물론이지, 나도 당신을 사랑해.”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식 웃겠지요.
이 말에 아내마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겠지요.
사실 나도 계면쩍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은 성리학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봤는데, 인간의 마음을 4단 7정으로, 잘 변하지 않아 인간의 단서가 되는 4가지 근본 된 마음인 4단(인.의.예.지)과 수시로 변하는 인간의 감정인 7정(희.노.애(哀).락.애(愛).구.욕)으로 세분하였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이 말했듯이 수시로 변하는 것이 인간의 감성인데, 사랑(愛)도 수시로 변하는 일곱 가지 감정 중에 하나인데 왜 변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사랑을 독립된 실체로 본다면 사랑 안에 다시 7정이 들어앉아 있겠지요.


사랑하게 되면 당연히 7정이,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겁고 사랑하고 두렵고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겠지요.
그런데 다들 ‘사랑’이란 단어 안에는 기쁘고 즐겁고 사랑하고 그런 좋은 것만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사실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는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만 가득하지만, 차츰 숨어있던 미움이나 슬픔이 나타나면 사랑이 식었다니 변했다니 하면서 서로 미워하고 다투고 그러지요.
사랑 안에는 항상 미움도 있고 성남도 있고 두려움과 슬픔도 함께 존재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랑이 기쁨과 슬픔이 서로 교차하고 순환합니다.
안과 밖이 반복되는 회전문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의 그런 감정들을 무게로 달았을 때 어느 쪽이 더 크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늘 나쁜 쪽으로 기울어있다면 사랑한다고 말하기 어렵겠지요.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 안에는 7정이 골고루 들어앉아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사랑해?” 물어보거나 그 무게를 재어본다고 해도 주저 없이 당당하게 말합니다.
“응, 사랑해.”





위의 작품은 조선시대 중기 김명국의 작품 설중귀려도 雪中歸慮圖입니다.

크기는 101x55 정도로 모시에 그린 제법 큰 그림입니다.

족자 형태로 표구되어 있고, 500년 가까이 걸쳐 전해내려 오면서 상하좌우 모두 잘려나가 작품의 모든 면을 볼 수가 없어 아쉽습니다.

설중귀려도 雪中歸慮圖라는 그림의 제목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눈 속에 나귀를 타고 돌아가는 사람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김명국은 1630-40년대 궁중 화원으로 활동하고 조선 통신사로 일본에 두 번 다녀왔던 인물로, 이 분의 작품은 달마도기려도(말을 타고 가는 사람 그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명을 설중귀려도설중기려도로 혼재하고 있음을 먼저 밝힙니다.

이 분의 전기와 인물평은 책과 인터넷 속에 가득하니까 그만두고 설중귀려도그림 감상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전날 눈이 잔득 내리고, 곧 눈이라도 다시 내릴 듯이 하늘은 잔득 찌푸려있습니다.

작품 속에 바람은 느껴지지 않지만 살을 파고드는 한겨울의 추위가 가득 차 있습니다.

 

작품 속의 인물 중심으로 세부적으로 한번 살펴볼까요?

나이든 노인이 먼 길을 떠나는지 아직 동이 완전히 트지 않은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습니다.

오른쪽 사립문에 기대 전송을 하는 인물은 아내인 듯한데, 떠나보내는 것이 몹시 아쉬운지 내내 손을 들어 잘 가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몹시 춥다는 것은 손을 소맷자락 안에 넣고 고개를 잔득 웅크리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저절로 느껴집니다.

왼쪽 나귀를 타고 떠나는 노인도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지, 차마 발길이 안 떨어지는지 연신 고개를 돌려 사립문의 여인을 보며 추운데 그만 들어가라고 손짓합니다.

그림 속에서 몸조심하시고 잘 다녀오세요.”  “이제 그만 들어가게, 들어가게하는 손사래와 물기에 촉촉이 젖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 않나요?

봇짐을 맨 시종의 표정은 추운데 이제 그만 가시지요.”하는 시큰둥한 표정입니다.

나귀는 이제 막 길 떠나는 시작이라서 그런지 지친 표정 대신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한 표정입니다.

 

그런데 나귀를 타고 길을 떠나는 작품에서는 대부분 다리가 등장합니다.

다른 작품에서는 거의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하겠지만, 설중귀려도에서 다리는 떠남과 헤어짐의 상징으로 보면 어떨까요?

마치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 먼 길을 떠나거나 헤어짐의 상징으로 비행기 공항이나 기차역 등으로 묘사 하듯이 말입니다.

강과 개울은 이쪽 땅과 저쪽 세계를 구분하는 상징이며, 서로 다른 곳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곧 짧은 시간 안에 돌아올 수 없는 떠남을, 헤어짐을 뜻하겠지요.

그러니까 추운날씨에도 서로 애틋하게 쉽게 떠나지 못하고 사립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겠지요.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해집니다.

두 사람의 사랑과 정 그리고 이별의 슬픔이 애틋하게 전해지는 듯합니다.

부부의 사랑과 정은 같이 살아온 세월의 길이와 비례합니다.

오늘은 내가 아내에게 먼저 물어보겠습니다.

날 사랑해?”


2013. 2. 23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