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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그림에는 슬픔이 짙게 머물고 있습니다 .

한 줄 오두막 편지

by 더불어 숲 2023. 4. 5.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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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럴 줄 알았다.’

서울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후회하고 아쉬워하며 나 자신에게 핀잔하는 말이었습니다.

 

미술관 예약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그냥 머물고 싶었는데, 요즘 작은 황토 구들방 하나 꾸민다고 몸 고생 마음고생이 겹친 탓인지 누적된 피로가 갑자기 몰려와 허락된 시간만큼 머물지 못하고 미술관 전시장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내 후회했습니다.

언제 이중섭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으려나, 시간 허락만큼 보고 또 보고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아둘 걸......

 

손바닥 크기 엽서나 작은 도화지에 마음 가는 대로 손이 가는대로 그린 이중섭 작품에는 꾸밈도 계획도 구도도 그다지 없습니다.

그냥 손에 잡힌 펜이나 색연필, 수채화 물감으로 마냥 그리고 싶어 그린, 엽서 그림이나 도화지 그림이 전시장을 가득 채워놓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 아내를 그리워하고 두 아들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절절하게 담아뒀습니다.

제주도 바닷가에서 두 아들과 벌거벗고 게 잡으며 뛰어놀던 그 행복했던 그 순간을 그리워하며 그렸으리라 짐작됩니다.

행복한 표정의 그림 속에는 오히려 슬픔이 가득 머물고 있었습니다.

담뱃갑을 감싸는 은박지에 못이나 펜촉으로 긁어 그린 그림에도 아들과 아내와 행복하게 서로 손잡고 뒤엉켜 웃음이 가득했지만, 그 속에는 가난과 그리움과 외로움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작품을 보는 내내 그의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당장 한 끼 밥을 걱정하고 냉기 가득한 쪽방에서 친구에게 얻어 입은 개털외투 하나로 웅크려 모진 겨울을 보냈던 그에게, 일본으로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그 외로움을 작품에 담던 그 순간이 모진 힘듦을 잊고 견디게 하는 마취제가 아니었을까 짐작됩니다.

작품을 보는 내내 그의 힘듦과 슬픔과 외로움 그리움 등등 간절한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몇 번이고 전시장 구석구석을 돌며 또다시 돌며 몇 번이고 보고 또 봐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나의 개인적 극도의 피로감과 작품 속의 슬픔과 외로움이 짙게 겹쳐 국립현대미술관(서울) 이중섭 전시장을 나와서 로비 의자에 걸터앉은 순간 후회했습니다.

더 머물고 더 오래 마주하며 볼 걸......

다음에는 운 좋게도 비 오는 날 그의 작품 앞에 다시 설 수 있길 버킷리스트 속에 넣어둬봅니다.

그때는 사진을 못 찍는다며 구박하는 아내를 미술관 구내 카페에 정중하게 모셔두고, 혼자 아주 천천히 보고 또 보며 작품에 배어 있는 그의 슬픔 외로움 그리움을 피하지 않고 정면 승부를 해보겠습니다.

 
2023년 4월 3일 박영오 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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