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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전야

한 줄 오두막 편지

by 더불어 숲 2023. 8. 1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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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마음 편히 쉬면 안 되나??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일기예보를 핑계로 그냥 쉬면 되잖아.

이런 이유 저런 핑계 다 갖다 붙여보지만 하룻밤 사이에 쑥쑥 자란 잡초를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어 호미 들고 뜰로 나선다.

 

그래, 어차피 비바람 몰아치면 쉬어야 할 텐데 그때 쉬면 되지 뭐, 비바람에 날려가거나 위험한 물건들 미리미리 살펴보고 아직 남은 잡초마저 뽑자.

비 오면 마음껏 책 읽고 싫증 나도록 음악 들으며 늘어지게 낮잠 자련다.

이놈의 잡초는 왜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거야, 호미질하며 혼자 구시렁 거린다.

대충 비설거지 마친 뒤, 잡초 뽑으려고 호미 챙기려는데 후드득후드득 연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

어라, 비가 내리네.

그래 이젠 쉬어도 나 스스로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지.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와 대충 씻고 기다렸다는 듯 찜해뒀던 책을 펼쳤다.

비 내리는 소리가 은은하다.

음악을 끄고 빗소리를 방 안으로 들인다.

책은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음악도 낮잠도 멀리 달아났다.

장마 이후 오랜만에 내리는 비를 멍하게 바라본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다.

그러길 여러 시간, 바람은 점점 거칠어지고 비는 요란하다.

태풍 '카눈'이 다가오고 있다고, 외출 자제하고 대비하라는 안내 문자가 계속 이어진다.

비를 여유롭게 즐기려는 마음이 이젠 걱정과 염려로 바뀐다.

우산을 쓰고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이래저래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잠은 이미 멀리 달아났다.

 

2023년 8월 10일. 박영오 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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