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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래 한 마리

한 줄 오두막 편지

by 더불어 숲 2023. 8. 2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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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낮추어 겸손하게 자기를 칭찬한다는 말에 어울리는 단어가 뭘까? 생각날 듯 날 듯하면서 머릿속에 맴맴 돕니다.

자애심, 자존감, 자화자찬..... 이것도 저것도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 데 다른 단어가 없을까?

 

아내가 뜬금없이 '당신은 성공한 삶이다'라고 말합니다.

갑자기 나에게는 최고의 찬사로 들리는 말을? 의아한 표정으로 잠시 바라봤습니다.

지금처럼 아내 말씀 잘 듣고 검소 소박하게 생활하라는 다독임일까요?

아직까지 소형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민 아파트에서 30년 가까이 이사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남편이 무슨 성공한 사람이라고.......

성공의 잣대를 물질적 부유함으로 견주지 않아서 다행입니다만, 아마도 검소하게 생활하지만 별나게 궁핍하게 유난 떨지 않고 남들에게 그리 인색하지 않아서 그럴까요?

아니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나름대로 균형 잡힌 생각과 합리적 판단, 적당히 바른 마음가짐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한 번도 아내가 모아둔 돈과 재산이 얼마고 우리의 경제적 사정이나 여력을 시시콜콜 물어보지도 않고 다른 욕심 없이 오직 나의 노동의 대가로 받은 급여로 마당 넓혀서 꽃 심고 나무 가꾸며 생활해서 그런가?

그런 걸 가지고 성공한 사람이라기에는 지나치고, 이 시대에 그런 꽁생원은 오히려 무시 받을 일인 것 같은데?

잠시 동안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말을 이어갑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아들 딸 부부가 당신을 존경하고 정신적 울타리가 돼줘서 고마워하는 것 같고, 상담하고 의논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성공한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랬구나.

아내와 아들 딸 부부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지요.

부유하다는 기준을 물질적 재산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가치도 중요한 재산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다행히 우리 아들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아마, 이리저리 견주어 이득이 되는 쪽으로 급히 따라다니지 않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지만, 남들을 그리 부러워하지 않고 나름 비교적 바른 마음으로 소박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곁에서 봐왔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대부분 우리 같은 소시민의 일상적인 모습인데, 자식들의 인사치레 위로 한마디에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내가 어린아이 같습니다.

내가 우리 가족에게 물려줄 재산은 누구도 탐내지 않은 내가 그린 한국화 그림 몇 점과 잡초와 씨름하며 꽃 피우는 마당뿐인데.......

 

아내가 출근하면서 '아들 오면 구워 주려고 간고등어를 사놓았는데 오래 두면 안되니까, 당신이 묵은 김치 넣고 고등어찜 해주면 안될까?' 부탁을 합니다.

아내는 역시 나보다 한 수 위입니다.

칭찬에 춤추는 고래, 그 말 한마디에 자화자찬하는 철 덜든 고래 한 마리가 간고등어 들고 여기 춤추고 있습니다.

 

2023년 8월 20일 박영오 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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