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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꿈대로....

한 줄 오두막 편지

by 더불어 숲 2023. 8. 23.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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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청량사 화첩기행

 

 

나를 할아버지로 만들어준 우리 딸은 어릴 적 꿈이 동화작가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 딸이 나중에 외할머니가 됐을 무렵 동화작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주 어린 시절, 겨우 책을 읽을 수 있었던 무렵, 그때 중학생이었던 6살 터울 형과 세계지도책을 펼쳐놓고 지명 찾기 놀이를 가끔 하곤 했습니다.

형이 지도책을 펼쳐 놓고 세계 지명 어느 한 곳을 말하면, 나는 세계지도 곳곳을 헤매며 열심히 그곳을 찾아내는 그런 놀이였습니다.

나중에는 서로 작은 글씨로 쓰인 가장 구석에 있는 나라와 도시 이름을 찾게 하곤 했습니다.

그런 놀이 덕분에 일찌감치 세계 지명과 지리적 감각을 빨리 익혔던 것 같습니다.

그때 나의 꿈은, 당시로는 전혀 현실 불가능한 세계여행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마 생활기록부 작성 때문인가, 취미 특기 장래희망을 조사했습니다.

특기인지 취미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나는 '여행'이라고 썼습니다.

70년대 초반 시골벽지 중학생이 감히 '여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던지 선생님이 다시 고쳐 쓰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림 그리기'였던가 아니면 '화가'라고 고쳐 썼습니다.

그런데 요즘 내가 잘하는 게 그림 그리기와 여행입니다.

꿈은 꿈대로 그냥 두면 긴 세월이 걸리더라도 꿈 가까이 다가가더군요..

나중에 우리 손자손녀가 꿈을 이야기하면, 그게 비록 비현실적이라도,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다른 꿈을 말하라고 하지 않고 그냥 웃어주고 격려해주려고 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삶 속에서 꿈이 없다면 제한구역에 갇혀 사는 감옥일 것 같습니다.

여전히 꿈을 꾸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꿈으로 바뀌지요.

유럽 여러 시골 마을을 여행하며, 그림 도구 갖춰 때로는 걷거나 때로는 자동차로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한두 달 시골마을에 머물며 그림 작업하기.

유럽 어딘가에서 여러 달 살기 하면서, 그곳으로 잠시 여행 온 아들 딸 부부와 손녀손자들 공항마중 하기 등등.

상상만 해도 즐거워집니다.

꿈꾸는 데 특별히 경비가 들지 않아서 좋습니다.

지금 오두막화실도 한때는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나의 꿈이었습니다.

마당이 딸린 자그마한 화실을 마련하고 꽃밭 가꾸는 것이 오래전부터 꿔왔던 꿈이었으니까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대부분은, 남들 보기에는 그게 무슨 꿈이야 할지 모르는 작고 소박한 것들이지만, 오래전 나의 꿈에서 출발했습니다.

황당한 꿈도, 꾸다가 보면 꿈 가까이 가더군요.

 

나를 외할아버지로 만들어준 우리 딸은 어릴 적 꿈이 동화작가였습니다.

혹시 우리 딸이 나중에 외할머니가 됐을 무렵 동화작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

 

2023년 8월 하순. 박영오 글 그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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