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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때는.....

한 줄 오두막 편지

by 더불어 숲 2023. 12. 6.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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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들 집에서 며칠을 보냈을 때, 아들 부부 출근하고 혼자 점심 먹으려고 아파트 부근 작은 식당을 찾아갔더니, 체인점이라서 그런지 식탁마다 마련된 키오스로 주문을 하는 겁니다.
식탁에서 개인별 키오스로 주문은 처음하는 일이라 조금 당황하고 서툴렀지만, 다행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나 햄버거 가게에서 몇 번 했던 경험이 있어 무사히 주문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 테이블 음식은 차례차례 나오는데 내가 주문한 음식은 도무지 나오질 않는 겁니다.
이거 내가 잘못 주문한 게 아닌가, 이미 카드로 결제까지 마쳤는데, 괜히 돈만 지불하고 음식은 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주문이 제대로 된 건지 물어봐야 하나, 여러 생각이 들어서 자주 주방 쪽을 바라봤습니다.
그런 나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주문한 음식이 곧 나온다고 알려주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 편히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서울에서 택시 잡는 것도, 지하철 표 끊는 것도 어렵습니다.
하나를 겨우 익히고 나면 다른 낯선 문명이 나타나, 늘 몇 발자국 앞서가는 세상을 겨우 겨우 따라가고 있습니다.
나도 한 때는 컴퓨터와 프린터기를 가장 빨리 구매해서, 그 당시 최신형 286 컴퓨터로 집에서 자랑스럽게 문서 편집해서 가족문집을 만들고 학급문집과 교지 만들어서 꽤 앞서갔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기계문명 앞에 서면 괜히 주눅이 듭니다.
그래도 열심히 뒤따라 가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문명은 우리 같은 노친네 보다 늘 한발 앞서 가지만,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단지 꿈뜬 노인을 하찮게 바라보지 말고  친절히 알려주고 기다려주는 미덕이 필요하겠지요.
나이가 들수록 손은 느려지고 생각도 점점 느려져 가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와 천천히 깊게 들여다보는 마음은 젊은이들보다 깊고 심오하다고 스스로 위로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도 한때 잘나가던 청년시절이 있었습니다.
'너희는 젊지만 늙어보지는 못했지?'

 

 

2023년 12월 6일. 박영오 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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