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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며

한 줄 오두막 편지

by 더불어 숲 2024. 2. 1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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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응진전(80호)

 

 

황토방 구들이 한번 장작을 지피면 온기가 2,3일 정도 지속됩니다.
어젯밤까지 따뜻했던 온기가 오늘 새벽 무렵부터 차츰 줄어들어 아직 곤히 자고 있는 아내 몰래 슬며시 일어나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무렵입니다.
군불 지피고 아궁이 앞에 앉아 멍하니, 타닥타닥 소리 내어 타는 장작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요즘 이런 걸 불멍이라고 하더군요.
아직 어둠이 남이 있는 시간, 혼자 불멍하며 생각에 잠기는 이 시간이 참 좋습니다.
부지깽이로 가끔 장작불을 뒤적뒤적 거리며 밤과 아침 어둠과 밝음이 교묘하게 공존하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오직 장작 타는 소리만 들리는 이 고요함, 불멍 하는 이 시간, 생각 없이 생각에 잠기는 그 단순함, 침묵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도 되는 혼자만의 시공간,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 뿌듯함..... 그냥 좋습니다.
새벽에 슬며시 일어나 군불 지피던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도 이런 마음을 느끼며, 혹시나 자식들이 춥지 않을까 방바닥에 아직 온기가 남았는데도 군불을 지피셨구나.....

설연휴 동안 오두막화실에서의 아내와 단 둘이 지내고 있습니다.
아들 딸 내외는 고향으로 내려오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설 연휴를 대부분 도로 위에서 차안에서 힘들게 보낼 것을 생각해서 애써 말렸습니다.
잘 생각했다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은근히 보고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여전히 아궁이 장작불은 타닥타닥 소리내어 타오르며 지극히 고요한 아침을 깨우고 있습니다.

 

 

2024년 1월 11일. 박영오 글 그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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