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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은 힘이 들어도

한 줄 오두막 편지

by 더불어 숲 2024. 2. 27.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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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늦은 시간까지 울타리 작업을 하다가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것을 빨리 하고 싶어서 아침 해 돋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왜 이러나 합니다.

근 한달 동안 울타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 강아지 삼월이 둘리 두 녀석을 보호할 울타리를 마당 전체를 삥 둘러치고 있습니다.
삼월이가 산에 갔다가 멧돼지 덫에 걸려 다리 하나를 잃게 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울타리를 둘러쳐야지 하면서 시작한지 꽤 오래됐는데 이제 겨우 끝이 저만치에 보입니다.
물품 구입하고 재료 마련해 오고 머릿속에 수없이 설계도를 그렸다가 다시 수정하고 시행착오로 다시 울타리를 치고.... 그러다가 보니 작은 울타리 하나 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됐습니다.
울타리 치는 작업 시간보다 쉬며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일을 빨리 마무리 하고 싶어서 때로는 언제 해돋지, 아침 해 돋기만 기다리기도 합니다.
새벽 4시 무렵에 일어나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다가 보니 아침 6시 무렵, 2월 하순의 하늘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울타리 치는 내내 이러고 있습니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며 일 중독이라고 비난 하면서도 은근히 재촉합니다.
아내도 울타리가 완성돼 그 안에서 강아지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걸 즐겁게 상상하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참 이상하지.
무슨 일을 이렇게까지....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삼월이 둘리가 안전하고 좋아할 테니까.
그런 이유, 그것만으로 충분히 설명이 안됩니다.

역시 하고 싶은 일은 하면 힘들어도 즐겁고, 그 일이 충분히 보상해 주고 치유해 주니까, 머리로 하는 일보다 적당한 육체적 노동이 보상심리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경제적 효과. 이윤의 극대화. 효율성 등등 삭막한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 정신을 거스른 이런 마음들은 혹시 마음의 오아시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아시스가 점점 많아져 점처럼 이어지면 푸른 숲이 되는 거지 뭐.
아침 든든하게 챙겨 먹고 다시 일하러 나가야겠다.
오늘은 울타리 끝을 맺자.

 

2024년 2월 하순. 박영오 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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