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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나이 탓이려니 합니다

한 줄 오두막 편지

by 더불어 숲 2024. 8. 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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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잠시 외출하고 돌아와 호텔 복도에서 갑자기 방호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호텔 '카드 키'에 룸넘버가 쓰여있지 않다.
프런트에 가서 짧은 영어로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을 하지?
정말 다행히도 추측하고 기억을 조합해서 객실을 찾아 돌아왔다.
잠시 멍하다.
이제 시작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건망증인가?
객실에 들어와 한참을 앉아서 생각에 또 생각.

오늘은 여행하며 어제 일 그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는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뭘, 스스로를 토닥거린다.
기억력이 줄어드는 대신 생각은 깊어지잖아, 그렇게 믿고 싶고 그래야 하는데.
다 나이탓이려니 합니다.
추억도 잊혀져 갑니다.
다행히 사진 몇 장으로 그때 그 장면을 되돌아보며, 지나면 다 아름다워지는 그날을 가끔 되살려봅니다.
그렇게 그렇게 잊혀져 가기도 하고 기억이 살아서 돌아오기도 하며, 사라져 가는 것에 조금조금씩 배여 가고 젖어가고 있습니다.
아픔이 배여있는 것들은, 세월 속에 무뎌져 가고 잊혀 가는 게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름다운 일들도 꼭꼭 간직해 두고픈 추억도 함께 그렇게 잊혀가고 사라져 가더군요.
이런 상황이 익숙해지고 당연하게 여길까 그게 덜컥 겁이 납니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늘어나는 주름살처럼, 나도 모르게 조금씩 잊혀 가고 무뎌져 가는 기억을, 그걸 내가 어찌하겠습니까.
달리 어쩔 방법도 없는 내 나이탓.

 

2024년 8월 초순 박영오 글 사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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