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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연은 우연히 다가옵니다.

편지 보냈습니다

by 더불어 숲 2017. 4. 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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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처사님(절에서 남자 신도를 말하는 일반적 호칭), 차 한 잔 같이 하시지요."

몇 년 전 의성 안평면에 있는 작은 절 '운람사'라는 산사에 우연히 들렸는데, 절 마당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좋아서 산사를 쉽게 떠나질 못하고 나무의자에 앉아 먼 산을 오랫동안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나무의자에 앉아 별다른 생각 없이 멀거니 먼 산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꽤 오래됐는지, 스님 한 분이 나오시더니 '처사님, 차 한 잔 같이 하시지요.' 그렇게 물어왔습니다.
절집에 가면 어쩌다 들린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소 닭쳐다 보듯'하는데, 얼굴이 맑은 스님이 차 한 잔을 권하시기에 반갑게 처소에 따라 들어갔습니다.
마주 앉아 차 한 잔 나누며, 서로가 처음인 두 사람이 아주 오래된 지인처럼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다녀오고 난 뒤에, 멀리 산아래를 넉넉하게 내려다볼 수 있게 마련해둔 소박한 나무의자와 그곳에서 바라보는 아스라한 산아래 풍경이, 산사를 둘러쌓고 있는 소나무 숲이, 여름 내내 운치를 더해주는 무성한 파초가 마음속에 남아 떠나질 않더군요.
그 무엇보다도 마음속이 다보일 듯이 투명한 얼굴을 가진 스님이 마음속에 내내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그날 이후 언제 어느 때 가도 넉넉하게 받아주시는 스님이 좋아 자주 운람사에 다녀옵니다.






오늘 ‘운람사’에 다녀왔습니다.(2017.3.17)
찻길이 절 마당까지 나있지만 산 아래에 차를 주차해 두고 호젓한 숲길을 따라 30여분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봄볕이 온 산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차를 두고 느릿느릿 숲길을 걸어 오르며 아무나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이 꼭꼭 숨어있는 봄꽃을 하나하나 찾아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산사로 올라가는 길섶에는 키 작은 양지꽃이 벌써 노란꽃을 피웠습니다.
아직 꽃이 피기에는 이른데도 할미꽃이 나도 여기 있소 하며 부끄럽게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대웅전 석축 아래 보라색 제비꽃이 강남에 머물고 있는 제비를 수줍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러 심어놓은 꽃이 아닌데, 제 알아서 뿌리를 내리고 이 봄 새싹을 올리고 꽃을 피웠습니다.
“고맙다. 제 알아서 꽃을 피워주었구나.”

''스님, 계세요?“
방문 앞에서 스님을 나지막하게 부릅니다.
적막한 산사에 내 목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마주앉아 차를 마시며 더러 침묵하고, 드문드문 세상 이야기를 나누며 창밖을 바라봅니다.
봄볕이 온 세상에 모유를 주고 있습니다.

스님, 그럼......
마당 끝까지 따라 나와 배웅해주시는 스님께 합장하며 작별 인사합니다.
우연히 들린 산사, "차 한 잔 같이하시지요." 그 한마디가 이제는 우리 가족이 모두 반갑게 찾아가는 필연적인 인연이 되었습니다.
필연적인 인연도 알고 보면 모두 우연히 다가옵니다.
그래서 우연히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에게는 어떤 인연이 될까?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

돌아서서 내려오는 길, 운람사 석축 아래 개나리를 꼭 닮은 꽃이 피었습니다.
분명 개나리는 아닌데....... 무슨 꽃일까?
내려오는 길 내내 개나리를 닮은 꽃이 머릿속에 맴돕니다.
그 꽃 이름은 뭘까? 어디에 알아보면 이름을 알 수 있을까?

이것 또한 인연일까?

2017. 3.17




운람사 주지 등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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