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금이 촘촘한 자(尺. ruler)로 재느냐, 아니면 간격이 듬성듬성한 큰 자로 재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이더군요.
젊은 시절에는 나름 촘촘하고 기준점이 명확한 자(尺. ruler)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했지만 나이가 드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듬성듬성해지고 있습니다.
한때 투철했던 국가관이나 나라를 생각했던 마음이, 절대적 가치라고 믿었던 종교적 신념도 어릴 때부터 의심 없이 믿고 따랐던 맹목적 신앙이 아닌가, 내가 믿고 따랐던 이 가치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 그런 의심이 가끔 들곤 합니다.
내가 확신했던 신념이 흔들리기도 하고, 이게 맞는 일인가 이게 옳은 일인가? 의심하고 돌아보게 되는 일이 잦아지고,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 살아보니 뭐 대수롭지도 않더라 하며, 선과 악의 구별, 옳고 그름의 분별,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 등등의 명확한 기준점이 변하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합니다.
수학 과학에서는 정확한 답을, 흔들리지 않은 진리를 추구한다면, 사회 인문학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테지요.
내가 믿고 있던 그 보편성마저, 이게 과연 맞는 것인가 숱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나의 이런 생각을 잘못 이해하면, 우리 속담처럼 ‘술에 술을 탄 듯 물에 물을 탄 듯’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그런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선택하는 눈이, 보편적 절대적 가치관에서 비교우위를 추구하는 것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비교해서 더 합리적이고 더 과학적인 것, 더 바람직한 것을 비교우위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물건을 선택하고 직업을 선택하고 등등 우리가 선택하는 것 대부분이 비교우위의 작용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게 내 스스로 의문을 가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순전히 내 개인적 주관적 생각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자주 듭니다.
그래서 가끔 나를 돌아보며 자신을 객관화시켜서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내가 무슨 심오한 철학자도 아니고 수도하는 성직자도 아니면서 뭘 이렇게까지 하고 있을까,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눈금이 촘촘한 자(尺. ruler)로 잰들 듬성듬성한 자(尺. ruler)로 측정한들 별다르지 않던데, 뭘 그리 야단스럽게, 뭘 그리 까탈스럽게 그러고 있냐고 자신을 나무라기도 합니다.
남들이 보면 그게 그거고, 50보 100보 별 차이도 없을 텐데..... 그래도 그건 아니지, ‘좋은 것이 좋다’가 아니라 좀 더 옳은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다집니다.
예전에 농촌에 가면, 집집마다 내년에 파종할 씨앗을 봉지에 담아 보관하거나 옥수수 씨앗은 자루 채로 처마 안쪽에 매달아 두곤 했습니다.
종자로 매달아 둔 옥수수는 아마 그해 수확한 옥수수 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이나 가장 좋은 것일 테지요.
그런 마음입니다.
농부가 밭에 파종할 씨앗을 고를 때, 썩은 것은 가려내고 튼실한 씨앗을 가려서 심듯이, 비교해서 더 좋은 것 더 옳은 것을 선택하려는 그런 마음입니다.
심오한 철학이나 가치관 인생관이 아니라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비교우위의 선택이 생활 철학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연이든 사람 살이든, 조금 더 옳은 것 그리고 더 좋은 것, 그렇게 대를 이어 선택되고 살아남는 것이, 어쩌면 이게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주장한 ‘진화의 법칙’이 아닐까 싶습니다.
‘50보 100보’라는 말 뜻은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다 같다’는 말인데 정말 그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농부가 파종한 씨앗을 고르거나 수확한 열매를 선과 할 때는 작은 흠집이라도 찾아서 가려내고, 그래도 그중에 더 나은 것을 고르듯이, 여전히 후진적인 우리 정치판도 이렇게 고르고 고르다 보면 진화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지요.
수시로 변하고 겉과 속이 다르고 말만 번지르 하게 하고 우리나라 근현대사 책 한 줄 읽지 않고 역사관 국가관 애국심도 없는 사람이 자기편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요리조리 양지만 찾아다니는 이 정치판에서 파종할 씨앗 고르듯이 옳은 사람, 우리와 우리 후손을 책임질 사람을 찾는 것이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정말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요.
2025년 1월 17일 이른 새벽. 박영오 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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