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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비워야 맑아지더군요

그림 이야기

by 더불어 숲 2017. 4. 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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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비워야 맑아지더군요.

언젠가는 필요할 때가 있겠지 싶어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쌓아두다 보면 열 중에 겨우 하나만 쓰게 되고 나머지는 결국 다 짐이 돼 버리게 되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별 필요 없을 듯 한 것은 즉시즉시 버리는데도 그래도 여전히 쌓입니다.
베란다 가득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 빈 종이상자가 쌓여있고, 대학진학으로 빈 아이들 방에도 창고처럼 이것저것 별 필요없는 물건이 가득합니다.
50대 중반을 넘긴 우리 나이 또래들은 어린시절을 다들 빈곤하게 살았기에, 그 옛날에는 다 필요하고 소중한 것들이기에, 차마 선 듯 버리지 못해서 그러할 것 같습니다.
마음은 절제하고, 생활은 검소하게 살았다면 쌓일 물건도 마음의 짐도 없었을텐데.......

그런데 정작 소중하게 간직해야할 물건들은 찾아보면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를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버이날 처음으로 달아준 색종이 카네이션, 철들고 첫 생일선물로 준 연필 한 자루........
어버이날 마다 보내준 편지......
마음이 담겨있고 이야기가 있는 그 소중한 것들이 오히려 없습니다.
분명히 잘 간직 한다고 어딘가 두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것을 지금 다시 찾을 수 있다면, 내 곁에 있다면 찾기 쉬운데 간직하고 두고두고 볼 텐데 말입니다.

마음속에 오랫동안 생각하고 간직해야 할 것들은 순간순간 행복했던 일, 사랑했던 일, 그때 그 순간을 돌이켜볼 수 있는 추억과 그 추억이 담긴 물건들인데.......
분명 이런 일들인데 자꾸 그런 소중한 가치들이 잊혀져가고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니 나도 남들처럼 경제적 가치만, 실용적인 가치만을 생각하고 담아두고 있는 듯합니다.

진정 소중한 것들을, 마음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추억이 담긴 물건들은 꼭 간직하고, 적은 돈으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쓸모없는 물건은 다 버려야겠습니다.
버려서 더 커진 방과 베란다 공간만큼 마음의 공간도 넓어지겠지요.

마음속에도 쓰잘데기 없이 가득 쌓아두어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들도 다 버리고 싶습니다.
미워했던 마음, 상처 받았던 마음, 자꾸 일어나는 욕심 등등.....
간직한 것보다 더 많이 버리고 버려 텅 빈 듯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것저것 가득 채워놓고 늘어나는 뱃살처럼 몸도 마음도 무겁게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라고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위의 그림 2편은 조선시대 16세기 무렵의 함윤덕이라는 분의 산수화입니다.
언제 태어나서 언제 돌아가셨는지, 정확한 생몰 연대를 알 수 없는 화가입니다.
추정으로 16세기 궁중 화원으로 활동하지 않았을까 추측들 합니다.
진경산수화가 아직 태동하기 한참 전이라서 중국화풍인 절파화풍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집과 산수가 소박해 우리 산천과 우리네 정서가 듬북 담긴 작품이라 여겨집니다.
 
이 분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적막하다 해야하나 아니면 고요하다 해야하나?
그림 속에서 바람 한점 느껴지지 않는 고요함이 녹아있습니다.
그림 두점 모두 어촌의 풍경인데, 잔물결 하나 없는, 수면이 거울 같은 지극히 고요함과 차분함이 느껴집니다.
 
첫 작품은, 강변의 초가집과 나무의 표현이 민얼굴의 깨끗한 피부 미인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강건너 저편의 소나무 숲이 아스라히 보입니다.
근경과 원경이 적절하게 어울려 원근감이 돋보입니다.
초가집 누마루에 앉아 책을 읽다가 말고 방문을 열어두고 강건너를 무심히 바라보는 선비가 보입니다.
 
둘째 작품에서는, 나무의 표현이 어쩌면 이렇게 간결할 수가 있을까 그저 감탄스럽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푸두득 날아오르는 물새떼 소리에, 문득 고개를 들어 강건너를 바라보는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강건너 저편을 바라보는 선비의 시선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애써 말로 표현 한다면 무심함이겠지요.


배위의 어부들의 낮게 속삭이는 소리마저, 강건너 푸두득 거리며 날아오르는 물새소리가 청둥치듯 크게 들릴 듯 합니다.
그리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담백함과 고요함이 배여있습니다.
굳이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거나 설명하려 들지 않고, 굳이 강조하려 하지 않아도 작가의 심정이 다 전해지는 담백한 작품입니다.
채색마저 아껴 겨우 담청색이 보일 듯 말 듯 합니다.

나도 그림을 그려보면 자꾸 뭔가 부족해 이것저것 그려넣어 설명하려고 하고, 처음 담백한 색깔로 출발해 색을 아껴야지 하면서도 나중에 보면 욕심을 덕지덕지 칠한 것 같아 자주 후회합니다.
베란다와 방 가득, 내다가 버려도 전혀 아깝지 않은 불필요한 것을 잔득 쌓아두고 사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함윤덕의 산수화에는 기름끼가 모두 빠진, 그렇다고 무미건조한 것이 아니라,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만 전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침묵하고 있는 사람처럼, 지극한 담백함과 절제의 미가 느껴집니다.
욕심을 모두 버린, 꼭 필요한 물건만 곁에 두고 무소유의 삶을 사는 수도자를 보는 것 같은 그런 심정이 듭니다.
그림 속에는 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생각과 성품이 녹아 있습니다.
 
나는 어느 경지에 가야 '함윤덕'의 경지에 이를까요?
버리고 비워야 맑아지는데.......
그림을 그릴수록 그 도달점이 점점 뒤로 물러가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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