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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집을 보신 적이 있나요?

그림 이야기

by 더불어 숲 2017. 4. 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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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의 마지막 날, 제가 5형제 중 막내인데, 위로 두 분 형님과 함께 아버지 묘소에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산소에 가려면, 초등학교 졸업 후부터 군 입대까지 청소년시절을 보냈던 우리 집을 거쳐 등산하듯 가파른 숲길 30여분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소년시절의 꿈이 담긴 집을 빈집으로 비워둔지 20여년이 지나서 그런지 다 허물어지고 이젠 뼈대만 남았습니다.
아버지와 형들이 흙벽돌 만들어 그 집을 지었을 때, 나도 흙벽돌 날라 가며 이것저것 힘을 보탰던 집이라서 갈 때마다 옛 생각에 잠기게 하는 고향집입니다.
가난했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온가족이 서로의 온기에 의지하며 지냈던 공간인데, 참으로 꿈 많았던 시절을 보냈던, 나의 내면적 정서 형성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우리 형제들의 추억이 가득 배여 있는 feeling의 공간인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나마 형체는 남아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한 폐허가 되었습니다.

다람쥐 뛰어 다니던 돌담은 허물어지고, 마당가에 작은 연못 만들어서 개울에서 잡아 온 버들치를 키웠던 그 연못은 형체도 찾아볼 수 없고, 바깥채에 쇠죽을 끓이던 큰 가마솥은 누군가 떼어가 빈 아궁이 터만 남았습니다.
마당가에 화단을 만들어 맨드라미 봉숭아 심고, 담장 위에는 채송화를, 담장 아래 길섶으로는 해바라기와 코스모스를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끊이지를 않은 참 예쁜 집이었는데.......
여름이면 마당가 감나무 아래에 멍석을 깔아놓고 어두워질 때까지 두런두런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던, 부모님과 형제들이 행복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의 우리 집이 내 눈 앞에서 하나둘 허물어지며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음속에는 우리 형제들이 체온을 나누던 그 시절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데, 청년시절을 그 집에서 보냈던 형들은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로 접어들었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도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곁에서 흙반죽 하면서 거들던 때가 어제 같은데.......

그래도 우리 형제들이 직접 심은 감나무 여러 그루가 여전히 아름드리로 자라고 있고 밤나무는 고목이 될 정도로 자라주고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내 손으로 직접 심은 은행나무도 아름드리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없어 그런지 나무마저 윤기 없이 외로워 보입니다.
그 집은 비록 사라지더라도 그 집에 살았던 추억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허물어진 그 터에 작은 오두막이라도 새로 지어 우리 오형제들이 가끔씩 만나 마음과 체온을 나누는 ‘힐링캠프’라도 마련하고 싶습니다.
더 늦기 전에.......







단원 김홍도, 그의 나이 40세(1784년)에 스스로 그린 자신의 집 풍경입니다.

김홍도는 자신의 친구 ‘강희언’과 스승 ‘강세황’의 지기 ‘정란’이 자신의 집을 방문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날의 모임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기록하여 ‘정란’에게 선물로 드린 작품입니다.

 

우선 집주인 김홍도가 손님들과 대청마루에 둘러 앉아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 청년 김홍도의 준수한 외모가 돋보입니다.

김홍도 옆에 앉은 ‘강희언’은 더운 여름날임을 암시하듯 부채를 들고 있습니다.

수염을 기른 분이 ‘정란’인데, 김홍도의 거문고 연주에 푹 빠져있는 듯 한 표정입니다.

그런데 멀리서 보아도 나이든 모습입니다.

 

열려진 방문 사이로 김홍도의 방안 풍경이 언 듯 보입니다.

방안의 벽에 비파가 걸려있고 공작의 깃털이 꽂혀 있는 화병과 책이 가지런히 쌓여있습니다.

이 방안의 풍경은 김홍도의 또 다른 그림인 ‘포의 풍류도’의 단서가 됩니다.

 

청년 김홍도의 집은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습니다.

단원의 심미안답게 정갈합니다.

우선 검소하지만 갖출 것 다 갖춘 마당 너른 초가집입니다.

학(鶴)을 부르고자 훤칠한 오동나무 한 그루 대청마루 곁에 심고, 마당 한가운데에 작은 연못 하나 마련해 연을 심었네요.

연잎 아래에는 당연히 잉어 몇 마리 노니겠지요.

 

연못 건너 오른쪽 바위 절벽 아래에는 노송 한그루가 자라고 있고 소나무 아래에는 돌로 만든 듯한 낮은 탁자가 놓여있습니다.

아마, 날씨 좋은 날이면 단원이 탁자 위에 종이 펼쳐놓고 그림을 그렸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반가운 친구가 찾아오면 주안상 차려놓고 세상살이를 안주삼아 주거니 받거니 했을지도 모르지요.

 

왼쪽 담장 아래에는 파초가 자라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김홍도의 ‘월하취생도’와 그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파초가 분명 마당에서 자라는 이 파초가 분명할 듯합니다.

그의 파초 사랑이 옆보입니다.

 

담장 밖에는 늙은 버드나무가 비스듬히 사립문으로 기대어있습니다.

사립문 밖 버드나무 그늘 아래에는 마부가 조는 듯 앉아서, 모시고 온 주인나리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앉은 자세로 봐서 시간이 꽤 흘러 주인나리가 언제나 돌아가려나 학수고대 하면서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는 표정입니다.

 

단원은 자신의 집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새가 날아올라 바라보는 조감의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렸으리라 여겨집니다.

 

나도 단원의 집처럼 소박하지만 정갈한 이런 집하나 짓고 사는 것을 욕심부려봅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우리 오형제 가족들이 자주 찾아와 정을 나누고, 한국화 동호회 도반들이 모여 그림 그리며 담소하는 풍경이 자꾸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혼자 누리려고 집 지으려는 생각은 애당초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여전히 철들지 못한 몽상가입니다.


(2013년 4월에 쓴 글을 다시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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