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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한 걸음 한 걸음을 모아서 옵니다.

한 줄 오두막 편지

by 더불어 숲 2024. 3. 28.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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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가 지나면 해는 하루에 한 걸음씩 길어지고 봄은 먼 남쪽에서 하루 한 걸음씩 북쪽을 향해 걸어온다고 합니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봄이 되고 꽃이 피는걸.

 

마당 정원에 해묵은 일이 잔뜩 쌓여있어 끝이 없습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꼭 몇 걸음 앞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우 하나를 완성하고 나면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일이 즐거워 아침 해가 언제나 뜨려나 이른 새벽부터 서성거리게 합니다.

땅을 골라 꽃 씨앗 뿌려 새싹 돋으면 옮겨심고 거름 주고.......... 그런 정원 일 중에 가장 힘든 일은 역시 잡초 뽑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잡초와의 싸움은 겨울이 와야 끝나는 일이니까요.

그 끝이 없는 일들이, 겨우 꽃 몇 송이로 충분히 보상을 받습니다.

짝사랑이지요.

수많은 연애편지를 보내고 겨우 한 번 준 눈길에 마음 들뜬 사람처럼 말입니다.

끝없는 일이지만 살펴보면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동안 그 일들이 오히려 육체적 힘듦뿐만 아니라 마음의 힘듦을 보상해 주고 치유하는 것 같습니다.

해묵은 잡초와 작년 꽃 잔해를 정리하다 보니 소란스럽게 새싹이 돋고 있습니다.

이건 서양 원추리, 이건 붓꽃 새싹, 이건 노랑 낮달맞이 꽃 새싹.... 벌써 설렙니다.

새싹 돋는 게 무슨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일까 싶네요.

이러니 이 아이들과 짝사랑을 안 할 수가 없지요.

 

남녘 어디선가 매화 폈다는 소식 전해오고 통도사에는 홍매화가 한창이란다 소식을 들은 지 오랜데 우리 집 매화는 언제나 피려나 조바심했습니다.

매일 한 번씩 매화나무 곁에 찾아가 꽃눈을 살펴봤습니다.

재촉하지 않아도 제 알아서 피고 아무리 잡아도 자기 알아서 떠나는 것을.....

봄꽃은 어른 걸음걸이 속도로 남쪽에서 따라 올라오며 꽃핀다고 하니, 통도사에서 여기까지 걸으면 며칠 걸리려나?

아니, 올해는 아장아장 아기 걸음걸이로 올라오려나?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꽃 한 송이씩 피워놓고, 발자국 발자국마다 두근거리는 마음 새겨 놓으며 여기까지 언제 오려나.

애타게 기다리고 그렇게 조바심쳤더니, ‘애라 여기 있다.’ 하고 매화가 밤새 꽃을 피워놓았습니다.

살펴보니 할미꽃도 피었고 돌단풍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서양 원추리 붓꽃 옥잠화 수선화 초롱꽃 금낭화 등등 새싹이 우리도 여기 있습니다.’ 하고 소란스럽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아기 걸음마로 올라오던 봄이 어느 순간 잰걸음으로 훅하고 다가왔습니다.

봄은 처음에는 올 듯 말 듯 애간장 태우다가 나도 모르게 곁에 다가와 나 여기 있지.’ 합니다.

작년에도 그러더니......

 

2024년 3월 28일 박영오 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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